국역 상주동학경전 스크랩
간행사
상주는 경주와 함께 예로부터 경상도의 문화와 역사의 중심축이었습니다. 따라서 금자동이 있던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에 의해 동학이 창도되고, 상주의 은자동에서 삼풍 김주희에 의해 동학교가 설립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동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 신흥종교이며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이 땅에 근대 민주주의를 실현한 민중혁명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한민족 반만년의 역사에서 가장 중차대한 의의를 지닌 동학의 각종 유물이 상주시 은척면 상주동학교당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랄 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학은 1860년 수운 선생에 의해 보국안민(輔國安民), 포덕천하(布德天下), 광제창생(廣濟蒼生)을 기치로 창시된 이후, 남접과 북접으로 나누어졌고, 최시형의 북접에서는 손병희에 의하여 천도교, 김용구에 의하여 시천교, 김연국에 의하여 상제교 등으로 불렸으며 남접에서는 경천교, 동학교, 청림교 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접의 한 분파였던 전봉준에 의해 전개된 갑오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이 혁명운동 과정에서 동학도들의 일방적인 희생과 처참한 말로를 목격한 김주희는 1904년 십승지의 하나인 상주군 화북면 장암리에서 경천교를 설립하고, 1915년경 동학교를 세워 종교화 하였으나 정중동의 자세로 부단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일제에 저항하였습니다. 그 결과 교주, 부교주 및 교인들이 구속되었고 급기야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에 교주는 옥고 끝에 병사하고, 부교주는 옥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전봉준의 고택이 있는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수백 억 원을 들여 거대한 동학농민혁명관을 세웠으나 이 전시관에는 대부분 전국적으로 기증받거나 구입하는 방법으로 확보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1,400여 점의 동학 유물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상주동학교당은 경상북도 유교문화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유물관이 확장되었을 뿐입니다.
이에 본 역주자는, 상주동학교당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마땅히 성역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수년 전부터 상주시의 지원을 받아 성역화의 기초작업으로 상주동학교당 소장 유물목록, 유물도록을 발간하였고 금번에 상주동학경전을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상주동학경전으로는 수운 선생이 지은 동경대전 외에 궁을경, 통운역대, 도원경, 도화경, 도성경, 성경(교정경, 도정경, 도수경), 축식 등이 있는데 축식을 제외한 모든 경전이 책판으로 새겨져 상주동학교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본 번역서는 상주동학교당의 판본 경전을 주된 대본으로 하였습니다.
상주동학은 수운 선생이나 천도교에서 주장하는 인내천(人乃天), 후천개벽(後天開闢), 교정일치(敎政一致)와 달리 체천(體天), 선천회복(先天回復), 교정분리(敎政分離)를 주장하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주동학경전이 번역되지 못하여 상주동학의 이러한 독특한 교리가 분명히 설명되고 규명되지 못한 면이 있었으나 본 번역서가 간행됨으로써 상주동학에 대한 연구가 보다 심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상주동학교당의 성역화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 주신 상주 시장님과 상주시 문화재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역주와 윤문 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장재호․김영옥 선생과 강정서 박사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아울러 책을 깔끔하고 아름답게 잘 만들어 준 역락출판사 이대현 사장님과 이소희 선생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2008년 9월 9일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장 번역 책임자 김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