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암집 (覺菴集) 글자크기
서지
 
해제
   
『각암집』은 조선 중기의 학자 전유경(全有慶 ; 1605~1643)의 시문집이다. 전유경의 자는 여선(汝善), 호는 각암(覺菴)이다.

이 책은 1925년 저자의 종8대손 두한(斗漢)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고, 목활자본이다. 권두에는 이직현(李直鉉)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두한의 발문이 있다. 시 58수와 아래 목록으로 제시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송철헌(宋哲憲)이 찬한 행장에 의하면 전유경은 1631년(인조 9) 백형(伯兄)과 함께 과거보러 갔다가 백형이 두역(痘疫)으로 여관에서 죽은 이후 과거를 단념하였다. 친명(親命)에 의하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을 사사하여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을 읽고 경서(經書)의 깊은 의미를 탐구하였다. 동문제현들과 교유했는데, 특히 우암 송시열 등과의 교유(交遊)가 더욱 깊어 항상 서로 학문을 토론하며 권선하였고, 쌍벽당(雙碧堂) 이원생(李元生)의 『사우록(師友錄)』에 기록된 육십일현(六十一賢)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637년 조정이 청(淸)에게 항복하였다는 말을 듣고 북향 통곡하였다. 1642년에 모친상을 당하여 슬픔으로 몸을 상하여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고 다음해에 죽었다. 전유경의 시는 단아하면서 도학자의 중후한 맛이 있다.『소학』·『대학』을 교육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여겨 인간생활의 기초에서 국가의 정치까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하였다. 「영남구폐소(嶺南救弊疏)」는 영남지방이 흉년으로 인하여 물자의 품귀현상이 일어나 민생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있음을 지적하면서, 물가의 조절, 부세(賦稅)의 경감, 대동법의 폐지 등을 건의하고 아울러 난민의 구제책을 진언하였다.

서(書) 가운데 「상사계김선생(上沙溪金先生)」은 스승인 김장생에게 상례(喪禮)에 대한 의문점을 질의한 것이다. 「정도백문(呈道伯文)」은 경상도 관찰사에게 난민구제에 대하여 진언한 것으로 극심한 재해를 당한 난민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허덕이는 실정이니 시급한 구제책을 강구하여 아사를 막아줄 것을 청하였다. 「대학집해(大學集解)」는『대학』의 난해한 구절이나 분명하지 아니한 내용에 대하여 선유(先儒)의 학설과 자신의 견해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도학설」은『중용』에 나오는 인심·도심을 그림으로 표시하고 천리(天理)에 따르는 것을 도심, 인욕(人慾)에 따르는 것을 인심이라고 지적하면서, 도학은 바로 이 도심을 기르고 사욕을 억제하는 방법임을 강조하였다. 이밖에 어버이를 섬기는데 필요한 「사친잠(事親箴)」과 형제 사이의 우의를 주장한 「화형제잠(和兄弟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