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포집 (覺圃集) 글자크기
서지
 
해제
   
『각포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인 이제권(李濟權 ; 1817~1881)의 시문집이다. 이제권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술첨(述瞻), 호는 각포, 아버지는 기덕(基德)이다.

이 책은 그의 손자인 진훈(鎭薰)·진보(鎭輔) 등이 편집, 간행하였고, 목판본이다. 권두에 장석영(張錫英)과 권상적(權相迪)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진훈·진보의 발문이 있다. 시는 한 편 뿐이고, 그 외는 아래 목록과 같다. 시「천형시(踐形詩)」는 실천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소(疏)의 「서적침심도시의진척사소(西賊侵沁都時擬進斥邪疏)」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서양인의 무도함을 성토하고 척사를 주장한 내용으로 의작(擬作)의 상소문이다. 논(論)의 「수제론(修齊論)」과 잡저의 「수신목십유육물(修身目十有六勿)」·「제가목십유육물(齊家目十有六勿)」·「백인잠(百忍箴)」·「정심잠(正心箴)」 등은 모두 수신·제가의 요목과 자신을 경계하는 내용을 적은 글들이다. 한편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은 그의 성리학적 관심을 표명한 글로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제권은 서당을 증축하고 학보계(學寶?)를 만드는 등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효우(孝友)와 친족간의 돈목으로 일향(一鄕)의 모범이 되었다. 권상적(權相迪)이 찬(撰)한 행장에 의하면 그는 용모가 준수하여 봉모(鳳毛)의 칭호를 받았고, 재예(才藝)가 뛰어나서 남의 칭찬을 받았으나 두 번이나 과거에 실패하였다. 자제교육에 유의하여 서당을 증축하고 학전(學田)과 학보미(學寶米)를 두어 학자(學資)에 쓰게 하였다. 만년에는 고성(固城)에서 진주에 이거(移居)하여 독서와 수양에 힘썼으며, 선현의 유적지를 순례하여 추모의 뜻을 표하였다. 1890년(고종 27)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