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집 (葛山集) 글자크기
서지
 
해제
   
『갈산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권종락(權宗洛)의 시문집이다. 권종락의 자는 명응(明應), 호는 갈산(葛山)이다.

이 책은 19세기말 경에 그의 증손인 의일(宜一)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고, 목판본이다. 권두에 1839년에 쓴 유도헌(柳道獻)의 서문이 있으며, 권말에는 이만유(李晩由)와 상대(相大)의 발문이 있다.

시 89수 외 여러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평이하고 질박한 시어와 소박한 짜임새, 절제된 수식 등이 조화를 이룬 점에서는 뛰어나나, 주제면에서는 선현들을 본받고자 하는 진부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갈산팔경방역옹소상팔경조격(葛山八景倣?翁瀟湘八景調格)」 같은 작품은 호방한 기상과 표일한 시품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항상 『효경』을 유학의 기본으로 여기고 궁벽한 시골 유생들을 위해 『효경』을 간행, 반포하였다.

그의 문인으로는 이헌경(李獻慶)을 들 수 있다. 그는 특히, 역경(易經)과 태극설(太極說)에 조예가 깊었다. 1812년(순조 12) 민란이 일어나자 향림들에 의하여 의병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서문석(徐文錫)이 찬(撰)한 행장에 의하면 그는 간재(艮齋) 이헌경(李獻慶)의 문하에서 경의(經義)를 강구하여 채번암(蔡樊巖),홍이계(洪耳溪), 박청재(朴淸齋)와도 교분이 두터웠다. 1812년(순조 12) 홍경래의 역란에 사림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었으나 난이 평정됨을 듣고 진(陣)을 파하였다. 1816년 호환이 심할 때 형산(兄山)에 기도하여 호환이 지식(止息)되는 등 이적이 많았다.

또 선조(先祖) 죽림공(竹林公;山海)이 단종의 복위사건에 육신(六臣)과 함께 참여했으나 아직껏 신원(伸寃)되지 못함을 원통히 생각하여 수차에 걸쳐 상소하여 마침내 복관(復官) 증작(贈爵)되어 금성단(錦城壇)과 영월(寧越)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케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