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촌집 (孤村集) 글자크기
서지
 
해제
   
『고촌집』은 조선 후기의 문관이자 학자인 배정휘(裵正徽 ; 1645∼1709)의 시문집이다. 배정휘의 자는 미숙(美叔), 호는 고촌(孤村), 본관은 성주이며, 아버지는 세위(世緯)이다.

이 책은 1940년 그의 8세손 정환(貞煥)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허전(許傳)의 서문과 권말에 이의국(李義國)과 정환의 발문이 있다. 글 중 「소흥의소(紹興擬疏)」라는 소에는 병자호란 때의 치욕, 거듭된 흉년으로 인한 민생고, 하부 관리들의 농간 등을 들어서 구제대책과 부조리 근절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잡저에는 입지(立志)·수심(收心)·지경(持敬)·동정(動靜)·심성(心性)·상수(象數)·율려(律呂) 등 29조를 문답식으로 그의 견해를 설파하였다. 설 중 「문설(文說)」은 문(文)은 이(理)로 주재를 삼는다는 논설인데, 이는 체(體)요, 기(氣)는 용(用)임을 밝히고, 문을 하려면 이치에서 구하고 이치를 밝히려면 성경현전에서 구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배정휘는 1673년(현종 14) 진사로 식년무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77년(숙종 3) 정언(正言)이 되고 다음해 지평(持平)이 되었고, 그 뒤 헌납(獻納)·평강현감(平康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 장령(掌令), 1694년에는 승지로 특진 되었다가 폐비사건으로 인하여 부령(富寧)으로 귀양갔다. 사헌부에 있을 때인 1679년에 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글씨를 잘 써 행목사송희규비(行牧使宋希奎碑)·지평여희림표(持平呂希臨表)·처사배상룡갈(處士裵尙龍碣) 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