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와선생문집 (剛窩先生文集) 글자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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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와(剛窩) 임필대(任必大)의 시문집, 1834년(순조 34)에 간행되었고, 8권 4책의 목판본이다.

임필대(任必大 ; 1709~1773)

자는 중징(重徵), 호는 강와(剛窩), 본관은 서하(西河), 수국(壽國)의 아들이다. 강와라는 호는 유약(柔弱)한 기질을 극복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 어려서부터 소학을 비롯한 경전을 읽었으며, 자라서는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퇴계집(退溪集)』등의 성리서를 초록하며 연구하였다. 과거를 보긴 했으나 별로 유념하지 않았고, 사의계(四儀契)를 설립하는 등 문중과 향촌에 교화를 펼치는데 주력하였다. 1742년 부친을 잃고, 이어서 두 형이 전염병에 걸려 죽자 가문의 책임을 맡았다. 1746년 현령 이길보(李吉輔)의 청으로 강학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관찰사로 온 민백상(閔百祥), 조재호(趙載浩) 등의 예우를 받았으며, 여러 차례 향리의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강학에 전념하여 우곡(雨谷) 김낙행(金樂行), 청부(靑鳧) 권렴(權濂), 칠계(漆溪) 최흥원(崔興遠) 등 당시의 저명한 선비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이보(伊輔)와 열보(說輔) 두 아들을 두었으며 사위는 권식(權湜)이다. 저술로 『봉선절목(奉先節目)』, 『제의(祭儀)』, 『문계약조(門契約條)』, 『서당강규(書堂講規)』, 『문회약조(文會約條)』 등이 있다.

『강와집(剛窩集)』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각 책 2권씩 책별로 목록이 있으며, 권두에 이광정(李光靖)의 서문이 있다. 권1에 부(賦) 1수, 시(詩) 60수가 있다. 권2와 권3은 서(書)로 각 37편, 30편씩 편차되어 있다. 권4에 잡저(雜著) 14편, 권5에 서(序) 13편, 기(記) 9편이 있다. 서는 대부분 계회(契會)와 관련된 것이다. 권6에 기(記) 5편, 제지(題識) 3편, 제문(祭文) 8편, 애사(哀辭) 3편, 묘갈명(墓碣銘) 2편, 권7에 묘표(墓表) 6편, 묘지(墓誌) 3편, 행적(行蹟) 5편이 있다. 제문은 경내(境內)의 효자와 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지은 것이 많고, 비지문(碑誌文)은 대부분 조선(祖先)의 선양을 위한 것이다. 권8은 부록으로, 이상정(李象靖)의 행장, 이의태(李宜泰)의 유사, 김굉(金?)의 묘갈명, 이의태 외 7인의 제문, 이상정 외 26인의 만사, 오계사상량문(梧溪社上樑文), 봉안문 및 축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의 부는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킨 정의번(鄭宜藩)의 의로운 죽음을 노래한 시총부(詩塚賦)이며, 권4의 잡저는 대부분 향촌의 질서 유지와 강학을 위한 절목(節目)과 규약(規約)이다. 저자는 「우율사칠설의의(牛栗四七說疑義)」에서 성혼(成渾)과 이이(李珥)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비판하고 이황(李滉)의 학설을 존숭하였으며,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서 강학에 힘쓴 남인계 영남 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