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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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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헌계미일기(海月軒癸未日記)」는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이 1583년(계미) 6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8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기록한 일기이다. 분량은 49면인데 일기의 본문은 제2면부터이고 제1면에는 간찰이 편철되어 있다. 1면에 16~18행, 1행에 20자 내외이며, 초서로 쓴 필사본이다. 400년이나 오래된 문헌이지만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날짜가 바뀔 때는 줄을 바꾸어 높여서 큰 글씨로 썼기 때문에 구별하기 좋다. 일기의 내용을 보면, 6월 2일에 여장을 꾸려 서행(西行)을 시작하였는데, 장맛비와 더위로 고생하며 길가는 상황을 기록하였다. 9일에 조령(鳥嶺, 새재)에서 조반(朝飯)을 하고, 11일에 충주(忠州). 12일에 달천(㺚川)에서 배를 띄워 여주(驪州)에 도착, 13일에 배에서 내려 말을 빌려 달려서 남부동 김정(金正)댁에 가니 빙군(聘君)은 이미 8일 밤 2경에 죽은 뒤였다고 기록하였다. 황여일은 자가 회원(會元), 호는 해월헌(海月軒)이다.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황응징(黃應澄)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으로 이름을 드러내어 1576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5년에 문과에 올라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임진왜란(1592)이 일어났을 때에는 권율(權慄) 원수의 종사관이 되었으며, 2등 공신에 올랐다. 무술변무사(戊戌辨誣使)의 서장관이 되어 북경에 가서 이름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조천록(朝天錄)」 등의 저서가 있다. 이 일기는 여행기록의 성격도 있지만 관료로서의 일상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이 일기는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기 10년 전의 우리나라 조정의 분위기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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