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간공일기 (貞簡公日記) 글자크기
서지
서지내용
서명 정간공일기 (貞簡公日記)
저자(성명/자/호) 정탁 (鄭琢) / 자정 (子精) / 약포 (藥圃)
판사항 筆寫本 책크기 30×24
발행자 발행년
주제 사건견문일기 작성시기 16세기 ( 1596.04.18 ~ 1596.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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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정간공일기(貞簡公日記)」는 당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였던 정탁(鄭琢, 1526~1605)의 1596년 4월 18일부터 12월 11일까지의 일기이며, 책은 모두 34면이며, 가로 장방형(長方形)의 종이에 1면에 17행이며, 1행은 20자 내외이며, 초서로 필사하였다.
이 일기를 적을 때는 임진왜란에서 4년이 지난 때였다. 일기에는 "○4. 22. 중국 사신을 전송하려고 벽제관에 갔다. ○4. 26. 동궁의 탄일(誕日)이라 문안하고 바로 비변사로 갔다. ○6. 12. 인사(人事)가 있었다. 홍경신이 이조좌랑이 되고, 류영경이 부제학이 되고, 이호민이 대사간이 되고, 박일로가 전라감사가 되었다. ○6. 15. 비변사로 사진(仕進)하였다. ○7. 12. 호서(湖西) 죄인 한현(韓絢)을 조사하기 위하여 국청(鞫廳)에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기의 내용은 모두 18면이며, 19면은 공란이고, 제20면 이하에 「추국청참감록(推鞫廳參監錄)」,「동 수종록(隨從錄)」,「동 공사록(供事錄)」그리고 몇 편의 시고(詩稿)와 품첩(稟帖) 등을 여백을 이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저자 정탁(鄭琢)은 자가 자정(子精), 호가 약포(藥圃)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현감 정원로(鄭元老)의 증손이다. 1526년에 출생하고 1605년에 졸(卒)하였는데, 80세를 누렸다. 벼슬은 좌의정에 이르고 호성공신에 녹훈되어 훈호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이고,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성품이 청명(淸明)하고 낙이다서(樂易多恕)하며, 임금을 속이지 않고 자신을 신의(信義)로 규율(規律)하여 입조(立朝) 50년에 크게 잘못되는 일이 없었다. 젊어서 이퇴계(李退溪)와 조남명(曹南溟)에게 사사(師事)하여 많은 훈도(薰陶)를 받았다. 저서에『약포집』,『용만문견록』등이 있다.
이 일기는 비록 짧은 기간의 기록이지만 당시 임금이 역적 또는 부역자를 조사하는 국청을 차리고 국문하는 관리를 임명하고 친히 사법권을 행사한 것을 일기에서 알 수 있으며, 그 시대의 인물들이 어떤 임무를 담당하였는가를 고증하는 자료로도 의의가 있다. 한편 초서의 교본(敎本)으로 삼을만한 가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