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옹이병탁역상일기 4 (癯翁李秉鐸曆上日記 4) 글자크기
서지
서지내용
서명 구옹이병탁역상일기 4 (癯翁李秉鐸曆上日記 4)
저자(성명/자/호) 이병탁 (李秉鐸) / 자목 (子木) / 구옹 (癯翁)
판사항 筆寫本 책크기 26×15
발행자 발행년
주제 생활일기 작성시기 19세기 ( 1815.01.01 ~ 1825.12.30 )
관련문집

해제
『구옹이병탁역상일기(懼翁李秉鐸曆上日記)』는 한산 이씨(韓山李氏) 문중의 이병탁(李秉鐸, 1760~1832)이 쓴 필사본 형태의 일기이다. 현재 이병탁의 일기로 확인된 일기는 총 6책(1책: 1823년 1822년, 2책: 1819년 1818년, 3책: 1821년 1820년, 4책: 1815년 1825년 1824년, 5책: 1817년 1816년, 6책: 1832년 1830년 1831년)이며, 전근대시기 관(官)에서 발행한 책력 위에 해당 날에 맞추어 기록한 ‘역상일기’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4책은 표지(앞 표지는 탈락됨) 포함 총 92면 분량의 일기로서, 을해력(乙亥曆; 1815), 을유력(乙酉曆; 1825), 갑신력(甲申曆; 1824)의 합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1815년 일기가 앞에, 차례로 1825년, 1824년 일기가 편철되어 있다. 을해력과 을유력은 12개월의 일기이며 갑신력은 윤7월이 포함되어 13개월의 일기이다.
일기의 내용으로서 유자(儒者)로서의 일상을 말하자면, 발생한 초상으로 말미암아 장례를 치루는 일, 천연두가 창궐한 상황, 알묘(謁廟)·천다(薦茶)·기제(忌祭)·성묘(省墓)·향례(享禮)·문병(問病)·문상(問喪)·수인사(修人事) 등 일반 유가에서 지켜지는 법도가 행해졌고, 1825년에는 8월 22일부터 8월 30일까지 도산(陶山)·온혜(溫惠)를 거처 청량산 유람을 다녀온 일, 1824년에는 윤 7월 1일 출발하여 초전(草田)-귀산(龜山) 오계사(梧溪祠)-연경서원(硏經書院)-칠계(漆溪) 농연(聾淵)-팔공산 부인동(夫仁洞)-동화사(桐華寺)-밀양 영남루(嶺南樓)-동래 범어사(梵魚寺)-부산 다대량포(多大兩浦)까지 유람하고, 되돌아 양산 통도사(通度寺)를 거쳐 8월 6일 귀가하는 장장 36일 동안의 회유, 사빈서원(泗濱書院)에서 행해졌던 밀암집(密庵集) 교감에 동참하기 위하여 11월 6일부터 사빈서원 주변 선창(仙滄)·도연(陶淵) 일대의 경승과 황산사(黃山寺)를 유람하고, 기양서원(岐陽書院)·운곡서당(雲谷書堂)의 유회(儒會)를 거치면서 이 지역 지구 인아친척의 융숭한 환대를 받고 27일 귀가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소지주 생활인으로서의 일상을 말하자면, 마을에 퍼진 천연두 때문에 온 집안이 피신하여 고초를 겪는 가운데 농사철을 맞아 파종을 하는 일이 적혀 있는데 이병탁의 농지는, 반석답·학재전답·길고답·송외답·원동구답 위치상 다섯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모두 2월 초에 보리를 파종하고 5월 중·하순에 수확을 한다. 동시에 그 토지를 갈아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여 5월 말 경에 마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타 신변사로 병든 사람을 구제하는 일, 자식이나 조카가 향시에 응시한 일, 문집의 교열 및 간행, 물가에 대한 기록, 산송, 추비(推婢)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병탁은 본관이 한산, 자는 자목(子木), 호는 구옹이다.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의 장손이며 주사손으로서 안동의 명문가 출신 유자의 한 사람이다. 비록 과거를 하지는 않았지만 학문적 소양을 갖춘 인격자였다. 이 점은 유자로서 평소 준행하는 여러 형태의 행례를 통하여 밝혀진 바이다.
이 일기는 빠짐없는 상세한 날씨 기록뿐만 아니라 19세기 안동지방 중소지주의 생활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1차 사료로서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