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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석빙고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산225-1 민속박물관 야외 민속촌 내
Description:
안동 석빙고는 보물 제305호로 원래 예안면 소재지에서 낙동강 상류를 따라 개설된 청량산행 길에 보이는 산기슭에 있었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1976년 1월 도산면 동부리에서 현위치로 옮겼다. 이 석빙고는 예안의 이매신 현감이 1737년(영조 13)에 부임하여 3년 재임기간 중 봉록을 털어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왕에게 바치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입구를 옆에 가설한 것이 특이하며, 봉토도 완전하여 외부의 모양은 커다란 고분으로 보인다. 안으로는 계단이 있고 중앙에는 배수로가 있다. 4개의 무지개 아치가 천장을 지탱하고 있으며 3곳에 환기 구멍이 있다. 여름에 얼음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서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며 우리 조상의 과학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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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현 객사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산225-1, 안동댐 주변 민속촌 내
Description:
선성현은 경상북도 예안의 옛 지명으로 예안군은 1913년 안동군에 편입되었다. 이 객사는 1712년(숙종 38년) 현감 김성유가 고쳐 지은 一자형 건물이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지역이 수몰되자, 안동군 도산면 서부동에서 지금의 성곡동 민속촌으로 옮겨왔다. 원래는 도산초등학교의 교무실 등으로 사용되어 왔었다. 객사의 평면은 중앙에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사를 배치하고 양옆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익사를 연결해 지었다. 주사의 맞배지붕은 양 익사의 지붕보다 한 층 높은 솟을지붕이다. 새가 머리를 들고 날개를 펴고 있는 듯 만들어진 전형적인 객사 건물로 왕의 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서 예를 갖추었다. 양옆의 익사는 사신이나 귀한 손님의 숙소로 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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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배씨 임연재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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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1017
Description:
안동에서 영덕 방면의 국도를 따라 가다 산 쪽으로 꺾어져 들어간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흥해배씨 임연재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은 1558년(명종 13) 임연재 배용길이 건립한 것으로 안동댐 수몰로 1973년 12월에 안동군 예안면 도목동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종택의 왼쪽에는 역시 수몰로 인해 1989년 임동 지례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고성이씨 지례파종택인 이태형고택이 있다. 임연재종가는 흥해배씨 안동 입향조인 백죽당 배상지의 종택으로 배상지의 8대손인 배용길의 당호를 취해 ‘금역당’으로도 부른다.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집은 몸채와 금역당, 사당 등 3채의 건물로 되어 있다. 건물의 배치는 대문을 들어서면 생활 공간인 몸채가 있고, 몸채의 왼쪽에 작은 담을 사이에 두고 별당인 금역당이 위치하며, 그 뒤편 높은 축대 위에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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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향교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1210
Description:
안동향교는 고려시대에 건립되어 이 고장의 공교육을 담당했다.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향교였으며, 대성전은 성균관과 그 규모가 동일했다고 한다. 따라서 정전인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해서 중국의 유학자 21위를 모시고, 동서 양무에 우리나라 명현 18위 등 모두 122위를 봉안하였다. 예전에는 명륜동에 있던 웅장한 건물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된 후 1987년 안동시 송천동의 현 위치에다 복원하였다. 이때에 동서무 제도 없이 중국의 성현과 한국의 명현을 함께 대성전에 모시도록 정하였다. 특히 중국의 다섯 성인을 제외한 현인들에 대해서는 국적 구별 없이 연차에 따랐다는 것이다. 현재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청아루, 주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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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취정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산 30-1
Description:
읍취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석문 정영방이 무이산 기슭에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안동 8대 경승의 하나인 선어대를 바라보며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선생은 영양 수비에 살다가 안동 송천으로 돌아와 선어대 아래에 정자를 지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시를 짓고 세상을 잊고 노년을 보내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정자가 황폐해질 때마다 다시 고쳐지었으나 마침내 건물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1980년에 송천파 후손인 정휘양의 주도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영방의 본관은 동래로 우복 정경세의 제자이다.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영양에 은거하여 서석지를 조성하여 살았다. 정자 입구에 모감주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선생의 아들이 영양 연당으로부터 옮겨 심은 것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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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서원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91(국립안동대학교 내)
Description:
안동지방에서 가장 먼저 창건된 역동서원은 1570년(선조 3)에 지방 유림의 공동의견으로 역동 우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다. 1684년(숙종 10)에 ‘역동’이라는 현판이 나라에서 내려져 선현 제사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9년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서원의 옛터는 낙동강 상류의 예안면 부포리 오담이었으나 안동댐의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는 송천동 안동대학교 안에 옮겨져 있다. 대개 서원의 명칭은 지역명이나 그 명현의 호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 경우에는 퇴계 이황이 우탁이 주역을 처음 연구하여 안동에서 가르친 것을 기념한 것이다. 경내의 건물로 상현사, 신문, 명교당, 동재, 서재, 장서각, 전사청, 주소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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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서원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 740
Description:
임천서원은 1607년(선조 40)에 지방 유림의 공동 의견으로 학봉 김성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곳이다.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학봉으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임진왜란 당시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진주성에서 순국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임천’이라는 현판이 내려져서 선현 제사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08년 현 위치인 안동시 송현동 속칭 호암마을에 다시 지었고, 이듬해에 그의 위패를 숭정사에 모셔서 봄 가을로 제사를 드리고 있다. 서원의 경내 건물로는 숭정사, 홍교당, 동재, 서재, 신문, 전사청 등이 있다. 강당인 홍교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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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추원재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동 산101-1
Description:
추원재는 원래 안동시 월곡면 노산리 마을 어귀의 산길슭에 있는 상촌 김자수의 어머니 일직손씨의 묘소 아래에 있었던 재사이다. 상촌 김자수는 1351년(충정왕 3) 현 안동시 금곡동에서 태어났다. 금곡동은 지금도 ‘김씨 골’로 통하는데 그것은 경주김씨들이 세거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김자수는 고려 공민왕 23년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 관찰사 등 현달한 지위에 올랐으나 나라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은둔하였는데, 조선 태종이 형조판서를 제수하여 부르자 아들에게 관을 준비하고 뒤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결코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경기도 광주에서 자결하였다. 이 재사는 조선 말기에 지어졌으며, 1973년 12월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옮겨졌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추원재 현판과 김자수의 15대손이 쓴 기문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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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동 치암고택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 119-1
Description:
치암고택은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이에 격분하여 세상을 떠난 이만현의 집이다. 원래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현 위치로 옮겨졌다. 또한 이 집은 지방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있다. 이 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된 목조 기와집으로 안채 지붕보다 사랑채 지붕이 더 높은 것이 특징이다. 사랑채의 왼쪽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오른쪽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사랑채의 기단은 자연석을 4단으로 높게 쌓았고, 다른 부분에는 자연석을 3단으로 쌓았다. 안채 대청과 사랑채 누마루는 우물마루이다. 안방 뒤 툇간과 일직선으로 대청 1칸까지 쌀뒤주가 있었으나 옮길 당시에 뒤주를 없앴다. 대문과 사랑채 정면에는 치암고택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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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계동 향산고택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안막동 119
Description:
향산고택은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한일합방의 울분을 단식을 통해 항의하다 순국한 향산 이만도의 옛 집이다. 지방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안동군 도산면 토계동에 있던 것을 안동댐 수몰로 1976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1986년 3월에는 한 집안 3대의 독립유공을 기려 ‘삼대독립운동가문’으로 지정하였다. 이 가옥은 一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로 이루어진 口자형 집이다. 사랑채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지붕 옆에 바람을 막기 위한 풍판을 달았는데 일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안채 양쪽에 방 전면에 폭이 60㎝되는 마루를 둔 것 또한 독특하다. 사랑채 정면에 향산고택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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