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자 금홍달이 지은 연꽃 가득한 정자

    효자 금홍달이 지은 연꽃 가득한 정자   효자 금홍달이 지은 연꽃 가득한 정자   효자 금홍달이 지은 연꽃 가득한 정자

    Address:

    경상북도 봉화읍 법전면 풍정리 아현마을

    Description:

    애일당은 효자 금홍달(琴弘達, 1633∼1704)이 봉화읍 법전면 풍정리 아현 마을에 지은 정자이다. 앞면 3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을 두었다. 정자 앞에는 아주 너른 연못이 있어 연꽃이 가득하고 오른쪽 측면은 산언덕에 기대어 있다.

  • 차가운 물처럼 맑은 정신을 닦는 수양 공간

    차가운 물처럼 맑은 정신을 닦는 수양 공간   차가운 물처럼 맑은 정신을 닦는 수양 공간   차가운 물처럼 맑은 정신을 닦는 수양 공간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Description:

    한수정은 1608년(선조 41) 봉화 춘양 동촌마을에 세워진 정자이다. 원래 춘양에는 충재 권벌(1478∼1548)의 농장이 있었다. 그의 아들 청암 권동보는 지금의 한수정 자리 남쪽에 거연헌(居然軒)이라는 건물을 지었는데, 불이 나서 없어지자 그의 아들인 석천 권래가 이 정자를 세웠다. 한수정은 T자형 평면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지붕 옆모습이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과 바닥을 1단 높여 온돌 2칸과 사방에 마루를 둔 건물이 붙어 있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하여 ‘한수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건물 3면을 연못이 둘러 감싸고 있는데, 정자는 크고 우람찬 나무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 높은 용마루를 가진 진주강씨 만산고택

    높은 용마루를 가진 진주강씨 만산고택   높은 용마루를 가진 진주강씨 만산고택   높은 용마루를 가진 진주강씨 만산고택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88

    Description:

    진주강씨 만산고택은 대문채가 다른 어떤 집보다도 크다. 웅장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나 칸수가 유달리 많다. 좌·우에 각 5칸씩의 행랑채를 거느리고 있으니, 총 11칸에 이르는 규모이다. 정자건물인 ‘칠류헌’도 거대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디다 가져다 놓아도 빠지지 않을 규모이다. 강백기가 말하는 이 집의 특징 중 다른 것으로는 용마루가 통상의 경우보다 높게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건물들의 용마루보다 기와를 더 여러 줄 쌓아 상당히 높게 가설했다는 이야기이다. 진주강씨 만산고택 사랑채의 용마루는 9층의 평기와를 쌓아올린 후에 둥근 호를 그리는 기와를 최종적으로 위에 덮어 완성하였다.

  • 집 주변의 산간정자

    집 주변의 산간정자   집 주변의 산간정자   집 주변의 산간정자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낙천당마을

    Description:

    산천정사는 황암(惶庵) 권철연(權喆淵, 1874~1951)이 살던 집의 뒤쪽 산록에 있다. 집은 거대하고, 사랑채는 물론이고 별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이 의양리는 춘양면소재지 큰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한적한 곳이다. 그러므로 집을 벗어나 다른 거처가 필요한 이유는 특별히 따로 없었을 것이다. 권철연이 산천정사, 혹은 산천재를 지었던 이유는 조선 후기 선비들의 미학적 관심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처사형 선비들은 정자를 특히 수양과 학문의 요람으로 생각하고 정자에 주목한다.

  • 입구는 작고 내부는 널찍한 정자

    입구는 작고 내부는 널찍한 정자   입구는 작고 내부는 널찍한 정자   입구는 작고 내부는 널찍한 정자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낙천당마을

    Description:

    태고정은 오른쪽으로 철도가 달려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철길은 일제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태고정은 단정하고 아담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문이 좀 작은 것일 뿐 본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작지 않은 정자이다. 정자는 가슴 높이의 대좌 위에 올라서 있다. 앞 선으로 나와 서 있는 기둥은 왼편 셋은 원형이고, 오른편 둘은 각형이다. 마루는 기둥 앞으로 한 뼘 정도 더 나와서 난간을 세워 두고 있다. 정자 영역을 휘도는 담장 안으로 여유 공간이 거의 없다. 뜰이 없는 정자인 것이다.

  • 추녀들림이 미약한 건물

    추녀들림이 미약한 건물   추녀들림이 미약한 건물   추녀들림이 미약한 건물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235

    Description:

    만석봉을 뒤로 두고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9칸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마당의 좌측에는 3칸의 서실이 있으며, 대문채와 마주하여 口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측 허리부분에는 토담을 좌·우로 뻗어 내외마당으로 공간구분을 하고 있으며, 동향 건물 임에도 툇마루를 설치하는 등, 남측 면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평면구성이 돋보이는 주택이다. 안동권씨 권진사댁은 넓은 공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집이다. 이 집을 지키고 있는 현 종손은 이 집이 목재 전체를 춘양목으로 지은 것이라고 하였다. 춘양목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큰 집을 전체적으로 춘양목을 써서 지은 경우는 쉽게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집이 처마 길이가 긴데도 추녀들림을 아주 미약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하여 주었다. 이곳의 추녀들은 끝 부분까지는 직선으로 나아갔다가 끝에 이르러 짧게, 아주 약하게 들림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처마 선의 약한 들림은 어찌 보면 건물의 끝선이 쳐져 보이게 하는 긴 직선의 약점을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런 때문인지 이 건물에서는 용마루의 끝 부분의 경우, 쌓아올린 기와장의 켜를 더함으로써 용마루 두께 자체가 끝 쪽이 높아지게 하는 효과를 강화하였다. 건물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미학은 단아함과 균형감이다. 벽면과 목재의 처리방식은 거의 모든 경우에 동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변화는 다만 구조적인 측면에서만 배려된다. 방이냐 마루냐의 차이, 창을 두느냐 마느냐의 차이 같은 구조적인 부분 외에는 동일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 구가암의 구조적 특징, 까치구멍집

    구가암의 구조적 특징, 까치구멍집   구가암의 구조적 특징, 까치구멍집   구가암의 구조적 특징, 까치구멍집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눌산리 579

    Description:

    이 건물의 미학은 상당히 독특하다. 특히 부엌문을 설치한 기법이 그러하다. 주초는 이중으로 놓여 있다. 대개의 경우 주초는 하나의 자연석을 쓰거나 기둥 굵기로 다듬어진 대석 위에 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 구가암에서는 조금 판판한 자연석을 2장 겹쳐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 이럴 경우 두 주초 사이에는 아무래도 틈이 생기고, 이 틈은 기둥의 안전성에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두 돌이 한 돌처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돌 사이의 틈을 메워서 하나로 늘여 붙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구가암에서는 이 문제를 두 돌 사이에 시멘트를 넣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전에는 어떠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주초가 놓인 위치는 높이에 차이가 있다. 평면을 깎아내고 기울기를 없앤 후에 건물을 앉힌 것이 아니라 건물이 위치하는 곳의 기울기와 흙의 요철을 그대로 두고 건물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의외로 옛 건물의 여기저기서 자주 확인된다. 여기서는 그 방식이 보다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것뿐이다. 구가암 건물에서 우리가 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부엌의 천정구조이다. 중앙의 서까래가 마지막 들보 위에 얹히고, 우측 사면의 서까래가 모여드는 지점에는 사각의 깊은 우물이 만들어지고, 그 속의 삼각형 꼭지점 부분 고매기는 비워져 있다. 흔히 까치지붕집이라고 하는 구조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까치구멍은 초가지붕에서 보이는데, 여기서는 기와지붕 속에서 나타난다는데 특징이 있다.

  • 영남에서 가장 큰 안채

    영남에서 가장 큰 안채   영남에서 가장 큰 안채   영남에서 가장 큰 안채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1165

    Description:

    강씨종택은 여러 건물들이 한데 모여져 있다. 一자 형상의 사랑채와 ㄷ자 형상의 좌우 건물채가 연결되어 口자형의 살림집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어른 몸통만한 자연석을 5줄로 높이 쌓아 대좌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안채는 영남지방의 안채 중 가장 크고 넓고 높은 편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중앙에는 마루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안채의 대청 전면에는 굵고 높은 두리기둥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연결채는 안채 아래쪽으로 2칸이 나가 있다. 왼쪽 연결채도 역시 2칸 규모인데, 제 2칸은 위는 마루, 아래는 기둥만 있는 빈 공간으로 작은 누각이라고 하겠다. 아래채와 위채 사이의 간격은 담으로 막고 측문을 두었다. 그 측문을 통해 뒤편으로 나가면 정자가 나타난다.

  • 소론의 학맥이 살아 숨 쉬는 공부방

    소론의 학맥이 살아 숨 쉬는 공부방   소론의 학맥이 살아 숨 쉬는 공부방   소론의 학맥이 살아 숨 쉬는 공부방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1185

    Description:

    이 건물은 해은 강필효(1764∼1848)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고자 정조 24년(1800) 마을언덕 위에 지었던 것을,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의 제자인 과재(果齋) 성근묵(成近黙), 효헌공(孝獻公) 성수묵(成遂黙) 등과 유림에 의해서 1840년(헌종 6)에 중수하였고, 1867년(고종 4)에 중건하였다. 그는 소곡(素谷) 윤광소(尹光紹)에게 공부하여 명재(明齋) 윤증(尹拯), 윤동원(尹東源), 윤동소로 이어지는 소론계의 학맥을 이어받아 제자인 성근묵에게 전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였다. 그는 여러번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매번 사직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지도에 전념하여 많은 저술과 수많은 인물들을 길러냈다. 이 서실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이다. 내부는 정면과 측면을 툇마루로 돌리고 벽체와 문으로 막은 단칸의 마루방으로 되어 있으며, 상부구조의 결구수법은 보기 드문 양식이다.

  • 형과 아우, 노론과 소론

    형과 아우, 노론과 소론   형과 아우, 노론과 소론   형과 아우, 노론과 소론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135

    Description:

    진주강씨 기헌고택은 2006년 현재 중수 중이다. 건물은 대문채와 본채로 되어 있다. 대문채는 지붕공사가 한창이었다. 대문채의 지붕 위에는 6명의 기와공이 올라가 있었다. 암기와는 바닥에 가지런히 깔려 있고, 수키와는 수북하게 이곳저곳 쌓여 있었다. 그 기와의 무더기로 보아 한옥의 지붕이 얼마나 많은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집은 모든 것이 높고 큰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바깥마당도 안마당도 널찍하다. 크고, 넓고, 높은 집이다. 통상의 경우보다 모든 것이 큼직하게 법식을 갖추어 지은 집이라고 하겠다. 이 마을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둘로 나누어진다. 양지쪽과 음지쪽이다. 음지쪽에는 이 진주강씨 기헌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양지쪽에는 강씨종택이 위치한다. 병자호란 때 강흡(姜洽)과 강각(姜恪) 두 형제가 이 마을에 들어와서 정착하게 되었다. 형제가 영남으로 내려왔을 때 형은 나이가 웬만하였고, 아우는 나이가 아주 어렸다고 한다. 형은 법전의 음지쪽에 자리를 잡았다. 진주강씨 기헌고택이 있는 이 마을이 음지쪽 마을이므로 음지마을(음지마)이라고 한다. 음지마을은 오늘날에는 법전리가 되었다. 형인 강흡의 후손들은 후에 노론(老論)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소론(少論)을 한 아우 강각의 후손들과 원만하지 못한 관계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노론·소론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두 후손들 사이의 알력도 사라졌다. 두 종가는 벌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방향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처음 분가를 하였을 때 형과 아우가 서로를 돌아보고 챙겨주는 우애가 작용한 결과물일 것이다. 후손들에게서는 그런 우애가 사라지고 서로 다른 정파에 속하는 분립까지 나타났었다. 세월의 광폭한 힘은 그렇게 무정한 것임을 알려 주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진주강씨 기헌고택에는 아직 세월의 광폭한 힘이 만들어낸 상처가 남아 있다. 전 종손 강정희(姜正熙)의 아들인 강신우(姜信友)·강신택(姜信宅) 등은 북한에 있다. 종손이 없게 되어서 할 수 없이 강만희의 아들 강신창(姜信昌)을 양자로 맞아서 후사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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