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야에 묻혀 학문을 강론한 전응방의 정자

    초야에 묻혀 학문을 강론한 전응방의 정자   초야에 묻혀 학문을 강론한 전응방의 정자   초야에 묻혀 학문을 강론한 전응방의 정자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348

    Description:

    야옹정(野翁亭)은 야옹(野翁) 전응방(全應房, 1491~1554)이 선조 때 건립한 정자이다. 야옹정은 구천리 전씨 종가가 있는 마을 뒤쪽 깊숙한 곳에 뒤편 야산을 배경하여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는 해마다 장릉에 찾아가 도포자락에 흙을 담아 능 위에 던져 올리고 울면서 절을 하여 충성과 효도를 갖춘 선비라는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야옹정이라는 현판은 야옹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고, 글씨는 퇴계 이황의 친필이라고 전해온다.

  • 우리의 건축 미학이 드러난 선성김씨 백암재사

    우리의 건축 미학이 드러난 선성김씨 백암재사   우리의 건축 미학이 드러난 선성김씨 백암재사   우리의 건축 미학이 드러난 선성김씨 백암재사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운계리 625

    Description:

    이 건물의 특징은 뒷면에서 보이는 지붕선을 제외하고 앞면과 양 측면에서는 추녀들림 방식을 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뒷면의 지붕선에서는 들림의 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건물은 口자형을 하고 있지만, 빈틈없이 서로 이어진 口자형이 아니라 아래편의 一자 형태 건물과 위편의 ㄷ자 형태 건물이 붙어 있다. 아래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이다. 중앙의 3칸은 대문 영역이고, 좌측과 우측의 각 1칸은 헛간 영역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사각형의 안마당이다. 안마당의 중간 정도를 옆으로 잘라서 아래는 평면으로 만들고 위에는 마당 전체를 다 7층의 계단으로 덮었다. 7층의 계단 위에는 섬돌을 놓아 안채의 마루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 전수동이 학생을 가르쳤던 서당

    전수동이 학생을 가르쳤던 서당   전수동이 학생을 가르쳤던 서당   전수동이 학생을 가르쳤던 서당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 324-6

    Description:

    구산서당은 구암(龜菴) 전수동(全秀東, 1791~1862)이 만년에 머물러 배우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서당 서편의 까치구멍집은 주사의 용도로 지어졌다. 이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건물로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건물은 서당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데, 서당보다 규모는 오히려 더 크다.

  • 지극한 충효의 마음을 담은 작고 소박한 사당

    지극한 충효의 마음을 담은 작고 소박한 사당   지극한 충효의 마음을 담은 작고 소박한 사당   지극한 충효의 마음을 담은 작고 소박한 사당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220

    Description:

    충효당의 정문은 작고 아담하다. 양쪽 나무판 문을 달고, 그 앞으로 반팔 정도 나아가서 앞 선의 기둥 둘, 또 그 뒤로 반팔 정도 나아가서 뒤 선의 기둥 둘을 키 높이가 조금 넘도록 세워 올리고 위에 지붕을 덮었다. 충효당이 서 있는 바닥면은 그대로 경사면이다. 이 바닥면의 기울기 문제는 건물의 아랫부분을 기둥을 써서 누각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충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이다. 맨 앞 선으로는 5 개의 원형기둥이 나와 서 있다. 마루에서 보는 목구조는 상당히 장엄하게 짜 맞추어져 있다.

  • 주자에서 퇴계까지, 무이에서 오산까지

    주자에서 퇴계까지, 무이에서 오산까지   주자에서 퇴계까지, 무이에서 오산까지   주자에서 퇴계까지, 무이에서 오산까지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245

    Description: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는 청량정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이(武夷)의 36동천(洞天)은 세상에 유명하니 회암(주자)선생은 정자를 짓고 노래해 말하기를, ‘나의 샘과 바위에서 살리라.’하였다. 청량의 12봉우리는 해동에 이름이 높으니 퇴도(退陶) 이황 선생은 산놀이의 기록에서 ‘우리집 산’(吾家山)이라 하였다. 이에 우리의 두 선생이 나와 노닐고 감상하는 여가에 경치 좋은 곳을 차지해서 그 인자함과 지혜로움의 끝없는 즐거움을 의탁하였다.” 즉 청량정사는 주희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따 지은 것이고, 그 안에는 정통 주자학을 계승하는 이황의 자부심이 표현되어 있다. 집의 규모도 그렇다. 오산당은 3칸 건물인데, 이는 무이정사의 3칸 집을 본받아 도산서당의 3칸 집으로 전해주는 연속과 계승이다. 오산당은 작지만, 오산당은 제대로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 김희주가 몸과 마음을 닦던 정자, 갈천정

    김희주가 몸과 마음을 닦던 정자, 갈천정   김희주가 몸과 마음을 닦던 정자, 갈천정   김희주가 몸과 마음을 닦던 정자, 갈천정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잿못마을

    Description:

    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 있는 갈천정(葛川亭)은 갈천 김희주가 지은 정자이다. 그는 1808년(순조 8) 당시 안동부 재산현 갈산리 선영 아래에 이 정자를 지었다. 산이 깊고 물이 돌아나가며, 아래에는 폭포가 있고 돌이 파여 그윽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위에 집을 짓고 재(齋)를 족한(足閒)이라 하고, 헌(軒)을 수월(水月)이라 이름 붙였다. 정자를 갈천정이라 이름 지어 현판을 걸었는데, 이는 만년에 한가롭게 몸과 마음을 정양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갈천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이다. 왼쪽 대청 칸 위에는 수월헌(水月軒)이란 현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 온돌방 칸 위에는 족한재(足閒齋)란 현판이 붙어 있으며, 가운데 방 위에 갈천정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정자가 있는 갈산리는 정자마(정자마을)라 불리는데, 이는 갈천정 건립 이후부터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 점점 퇴락해가는 옛집

    점점 퇴락해가는 옛집   점점 퇴락해가는 옛집   점점 퇴락해가는 옛집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소천 1리 190

    Description:

    김갑동가옥은 이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길 쪽으로 나와 마을 집들의 앞 선을 구성하고 있기도 하다. 대문 앞으로는 서쪽 편으로 치우쳐서 젊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다. 아이 몸통만한 굵기에 이른 이 은행나무는 김갑동가옥 위로 스치고 지나간 세월의 길이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이제 건강한 활력을 뽐내고 있다. 김갑동가옥 역시 그런 활력을 드러내 보여주어야 하는 나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 위에 걸쳐진 세월과는 달리 김갑동가옥 위를 스쳐 지난 세월은 가혹한 야만성을 행사하여 이 집에서 생활의 훈기를 앗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떠나고 집은 방치되어서, 건물 구석구석이 무너져 가고 있다.

  • ㅁ자 구조의 널찍한 고택

    ㅁ자 구조의 널찍한 고택   ㅁ자 구조의 널찍한 고택   ㅁ자 구조의 널찍한 고택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Description:

    계서당(溪西堂)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동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집이다. 정면 7칸, 측면 6칸의 口자형으로 되어 있는 사랑채는 후에 넓히거나 다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쪽 마당 끝에 대문간채를 두고, 그 북쪽 높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口자형 집을 이루고 있다. 대문칸을 들어서면 비교적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맞은편 높은 곳 서쪽에 중문간채가 있다. 동쪽에는 사랑채가 자리 잡았고, 사랑채 서쪽의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가 있다. 또한 동북쪽에 사당을 배치하였다. 이곳의 안채와 사랑채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채는 도장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사랑채는 대부분 홑집인데, 이 집은 겹집으로 만들어 안채의 날개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안채 부분이 약간 변형되었다.

  • 일제치하 순사 주재서였던 화수정사

    일제치하 순사 주재서였던 화수정사   일제치하 순사 주재서였던 화수정사   일제치하 순사 주재서였던 화수정사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 창마을

    Description:

    화수정사의 고방은 일제시대 초기에 순사들의 주재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1910년경의 일이다. 나중에 장터에 지서가 지어지면서 순사들은 그곳으로 이동하여 갔다. 이것은 당시의 물야에서 오록의 풍산김씨 일문이 가장 주의 깊게 관리될 필요가 있는 곳이었다는 것과 상관되는 문제일 것이다. 화수정사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정면 4칸 중, 오른쪽 2칸은 방이고, 왼쪽 2칸은 마루이다.

  • 돌담으로 이루어진 오록마을

    돌담으로 이루어진 오록마을   돌담으로 이루어진 오록마을   돌담으로 이루어진 오록마을

    Address: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 창마을

    Description:

    노봉 김정은 오록마을에 입향하여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노봉정사를 지어 후학들을 교육하는 곳으로 삼았다. 오록마을에 들어가면 돌담으로 쌓은 울타리가 특히 눈을 잡아끈다. 집들은 넓은 평지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다들 큼직큼직한 기와집들이다. 아마도 옛 사람들이 말한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이런 집들로 보인다. 고대광실로 이루어진 마을, 잘 정비된 마을 길,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산 속의 평지, 조용하게 불어드는 바람, 풍부하게 쏟아지는 태양빛. 그 속에서 두터운 돌담 안에 자리 잡은 옛 집. 오록은 그렇게 건물만큼이나 건물이 놓인 환경이 아름다운 곳이고, 환경만큼이나 건물의 품격이 높은 향취를 풍기고 있는 곳이다. 노봉정사는 그런 오록마을의 한가운데에 돛대처럼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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