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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정(少流亭)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21
Description:
소류정은 청송 지역의 의병대장 심성지(沈誠之, 1831~1904)가 유거(幽居)하던 정자이다. 심성지는 1896년에 의병을 창의하여 안덕과 감은 지역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심성지뿐 아니라 그의 큰아들과 증손 등 3대가 나라에서 훈장을 수여하였다. 정자의 옆에는 3대가 훈장을 받은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 덕천마을에 터를 닦은 청송심씨문중은 악은 심원부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600여 년간 살고 있는 청송심씨의 대표적인 집성촌이다. 심원부는 고려말 조선초기의 72현의 한 사람으로 두문동으로 들어가 여생을 보낸 현자이다. 청송읍에는 운봉관, 찬경루, 청송향교 등 청송심씨 집안과 관련된 고건축물들이 있다. 그리고 안덕의 신성리에는 다섯 명의 신선이 노닐었다는 방호정이 있고, 고와리에는 흰색 바위가 절경을 이루는 백석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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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松召古宅)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76
Description:
송소고택은 경북의 대부호인 송소(松召) 심호택(沈號澤)이 1880년대에 건립한 집이다. 조선후기 한옥구조로서 별묘까지 합쳐 대지 면적만 2,700평이다. 그 부를 짐작케 할 정도로 큰 규모의 집이다. 심호택은 조선 영조 때 큰 부를 누리던 심처대(沈處大)의 7세손이다. 송소고택은 심씨 집안이 파천면 지경리(호박골)에서 이사오면서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송소세장’(松召世蔣)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그후 9대에 걸쳐 만석꾼의 재산을 소유하며 경북 최고 부자로 자임하였다. 구한말 시기 청송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심부자집 땅을 밟지 않고는 갈 수 없다 할 정도로 엄청난 부를 누렸던 집안의 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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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초전댁(靑松 草田宅)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212
Description:
초전댁은 조선 순조 때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를 지낸 청송심씨 17세손인 심덕활(沈德活)이 지은 집이다. 심덕활은 아우 심덕종(沈德宗)이 요절하자, 자신의 친아들 심헌문(沈憲文)을 심덕종의 양자로 들여 그 후사를 잇게 하였다. 이 집은 심헌문의 4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1806년(순조6년)에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21세 후손인 심의해(沈宜海)가 1900년에 보수한 뒤 계속 세거하여 현재 이르고 있다. 초전댁은 정면 6칸, 측면 5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지붕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양식을 함께 갖추고 있고, 집의 전체 구조는 ‘ㅁ’자형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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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재사(堯洞齋舍)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덕천리 226-1번지
Description:
요동재는 청송 심씨 12세손인 심응겸(沈應謙)이 학문을 연마하고 심성을 기르던 곳이다. ‘요동’이라는 이름은 요(堯)임금과 같은 성인이 되겠다는 뜻에서 붙인 것이다. 건물이 많이 훼손된 것을 1890년대 당시 심씨 문중 유사(有司)이던 심능규(沈能奎)가 종중의 결의에 따라 재보수 공사를 하였다. 그리고 지난 2003년 유교문화권사업에 의해 해체 보수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집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2칸과 왼쪽 후면의 1칸은 온돌방이고, 나머지 3칸은 누마루 형식을 띤 마루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담장은 흙담에 기와를 얹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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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歸來亭)
Address: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63
Description:
청송군 덕천리 덕천마을에 위치한 귀래정은, 의성에서 이곳으로 입향(入鄕)한 아산장씨 후손들이 1938년(무인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난간을 따로 설치하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현재 정자 앞에는 잔디를 많이 심어서 주변 자연의 풍광과 좋은 조화를 이룬다. 귀래정이 자리하고 있는 덕천마을은 송소고택, 요동재사, 영천댁, 소류정 등 청송심씨 집안의 목조 건축물들이 많다. 그리고 귀래정 앞에는 류씨 집안 정자인 학산정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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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댁(참봉댁)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72
Description:
영천댁은 청송 지역의 대부호 심호택의 둘째아들 송정(松庭) 심상광(沈相光)이 기거하던 집이다. 심상광은 자가 순화(純華)이고 호가 송정(松庭)으로, 참봉어른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영천댁은 참봉댁이라고도 불린다. 심상광은 학문이 뛰어나서 안동 도산서원의 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영천댁은 대략 1900년도 전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대지면적 1,000여 평의 터에 ‘ㅁ’자형의 구조로 지어진 집이다. 파천면 덕천리 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의 마을 안에는 경의재, 찰방공파 종택. 창실댁, 초전댁, 송소고택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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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방공종택(察訪公宗宅)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78
Description:
찰방공종택은 청송심씨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9세손 심당(沈?, 1606~1674)의 종택으로, 1920년경 그의 후손들이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덕천마을에 건립한 것이다. 심당은 자가 자경(子警)으로, 퇴계학에 정통한 청송심씨 집안 학자였다. 찰방공 종택의 건물은 ‘ㅁ’ 자형으로 지어져있다. 정면 우측 앞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사랑채와 연결하였고, 안채에는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을 두고 부엌 좌측에 작은 방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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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실댁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210
Description:
창실댁은 파천면 덕천리에 자리하고 있다. 대지 면적이 400평이나 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덕천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아래로는 경의재가 있고 위로는 찰방공파 종택과 송소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창실댁은 안채, 좌익사, 사랑채 그리고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방앗간 채를 제외한 건물은 모두 벽면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마당 한 구석에는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다. 이곳 덕천마을은 악은 심원부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600여 년간 세거하며 사는 청송심씨 집안의 대표적인 집성촌이다. 심원부는 고려말 조선초기의 72현의 한 사람으로, 두문동으로 들어가 생을 보낸 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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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재(景義齋)
Address:
경상북도 청송군 덕천리 33번지
Description:
경의재(景義齋)는 청송군 덕천리 덕천마을 한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6칸 반의 1동 건물로, 안채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외에 7칸 크기의 행랑채 1동, 관리사 1동, 1칸 목조와가로 만들어진 신도비각 1동이 있다. 대문과 행랑채는 맞배지붕으로 만들어졌다. 경내 우측에는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 삼대의 제단비(祭壇碑)를 세워서 후손들이 오래도록 심원부의 충심을 추념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현재 경의재는 후손들의 수련도장으로 사용된다. 경의재가 위치한 덕천마을은 청송심씨 집안의 오래된 집성촌으로, 경의재 외에도 송소고택, 요동재사, 영천댁, 소류정 등의 목조 건축물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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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곡재사(岐谷齋舍)
Address: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427(가람 신길 27-120)
Description:
기곡재사(岐谷齋舍)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조상이자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시조인 이석(李碩)의 묘소를 관리하고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기곡재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40년(영조16)에 다시 중건했다. 그러나 1787년(정조11)에 화재로 다시 한 번 소실된 뒤 1849년(헌종15)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851년(철종2)에 중건하였다. 기곡재사에는 조선 후기 경상도 북부 지방 사대부가에서 관리한 재사의 형식과 기능이 잘 보존되어 있고, 현재에도 여전히 재사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1994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291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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