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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당
Address: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 925
Description:
영수당은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을 석정마을이라고 한다. 마을은 남북으로 통과하는 도로에 의해 동서로 나누어지는데, 영수당은 동쪽 마을 도로변에 위치해있다. 이 건물은 안동권씨 문중에서 지은 것이다. 길 건너에는 감나무 4그루가 나란히 서있으며, 건물의 동쪽 담으로도 큰 감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가옥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주변에는 송학서원, 퇴은재, 망운정, 남포정 등이 안덕면에 자리하고 있고 멀리 신성리에는 방호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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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계정(梅溪亭)
Address: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Description:
청송군 현동면에 있는 매계정은 현동면소재지에서 월매리 방향으로 약 8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에는 사찰 용암사와 경북대학교 부속연습림이 있어서 주변경관이 수려하다. 그 밖에 거성리 신풍저수지, 개일리에 남금당, 창양리에 후송당과 경모정, 인지리에 떡갈나무와 동암정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매계정의 옆에는 의성김씨 원산재가 자리잡고 있다. 월매계곡이 시원한 협곡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두 개의 폭포로 이루어진 물바람은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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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정
Address:
문경시 동로면 간송리 895
Description:
천산정은 동로면 간송1리 옛 천주사(天柱寺) 자리에 1904년 소산거사(小山居士) 황범주(黃範周)가 세웠다. 황범주는 호가 소산거사이며 본관은 장수(長水)로 칠봉(七峯) 황시간(黃時幹)의 후손이다. 그는 정자를 짓는 의의를 “경신년(庚申年)에 조부의 묘소를 백운동(白雲洞)으로 받들어 모시고, 또 임진년에 부친을 청사촌(靑獅村) 뒤에 모셨으니 아아 천주(天柱)는 곧 우리 가문 대대의 장지(葬地)가 하리니, 이 정자의 지은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았도다” 하며 술회하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반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그리고 평면상으로 왼쪽으로부터 온돌방 2칸과 대청 1칸을 연접하였다. 한말의 서예가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쓴 천산정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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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지관
Address:
문경시 문경읍 상리 351
Description:
문경읍 상리의 문경서중학교 안에 위치한 이 건물은 출장간 관리, 외국 사신 등이 숙소로 쓰거나 임금께 예를 올리던 조선시대 객사 건물로 전한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1990년 보수 당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서 1648년(인조 26)과 1735(영조 11)에 각각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군청사로 사용하다 1950년경 문경서중학교 교무실 등으로 이용하였다. 원래 주관과 부속관인 좌우 날개집(익사)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관과 좌 익사만 남아 있다. 주관(정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좌 익사는 정면 2칸 측면 2칸인데 두 건물이 반 칸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주관의 지붕을 좌 익사보다 높게 하고 용마루 양끝에 독수리 머리 장식 기와를 얹어 그 위용을 갖추게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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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관
Address: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327-1
Description: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문경 조령(鳥嶺)의 가장 앞에 위치한 제1관문이다. 2, 3관문이 있는 곳에 비하여 계곡부가 비교적 넓은 편이고, 성문 안쪽은 특히 넓고 평평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도 일반인이 거주하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주흘관은 남쪽에서 침범하는 적을 막기 위해 1708년(숙종 34)에 축조한 것으로 홍예문을 낸 성벽 위에 주흘관을 세웠는데, 전면에는 주흘관, 후면에는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란 현판을 걸었다. 주흘관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인데, 처마는 겹처마이다. 동쪽 성벽이 시작되는 곳에 성황사(城隍寺)와 산신각(山神閣)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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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관
Address: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502
Description: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문경 조령의 마지막 관문인 제3관문이다. 조령관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막기 위해 건립한 관문으로, 선조 때에 조성한 후 1708년(숙종 34년)에 중창하였으나, 1907년 항일 의병전 때 일제가 소각하였고 1976년에 복원하였다. 문루는 돌로 축조한 홍예문 위에 있으며, 문루 앞쪽에는 조령관, 뒤쪽에는 영남 제3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조령관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인데, 가구(架構)는 오량가의 삼익공(三翼工) 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성 남벽 쪽에 산신각과 조령 약수가 있으며, 북벽 쪽에는 군막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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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곡관
Address: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산 42-1
Description: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2관문으로, 남쪽에서 오는 적을 막기 위해 1594년에 신충원이 가장 먼저 축조한 것을 임란 직후 개축하였으며, 1907년에 일본군이 항일 의병장인 운강 이강년과 전투를 할 때 소각한 것을 1975년 복원하였고, 문루의 명칭도 조동문(鳥東門)이라 하던 것을 조곡관으로 개칭하였다. 좁은 계곡부에 위치하며, 서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며, 동쪽은 산세가 험하고, 앞쪽에도 5m 정도 되는 곳에 성곽과 평행하게 물이 흘러 외적을 방어하기 쉽게 축성되었다. 성곽은 크게 문루와 이와 연결되는 좌우의 평지성, 동쪽 평지성과 연결된 산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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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귀정
Address: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산 42-8
Description:
새재 1관문과 2관문 사이의 절경지인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이 있는 용추(龍湫)와 새재(鳥嶺) 옛길 앞에 자리하며, 조선시대 경상감사가 왕명을 받들어 한양을 출발해 경기,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 땅으로 오게 되는데 경상감사가 이곳 교귀정에 당도하면 신구 경상감사가 관인과 인수인계 물목을 기록한 서책을 서로 주고받는 교인식을 거행하던 장소이다. 교귀정 건물은 1470년대에 문경현감(聞慶縣監) 신승명(愼承命)이 건립하였다. 1896년에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조선시대 경상감사가 첫 근무를 시작한다는 곳의 의미와 가치가 크다 하여 1999년 6월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조령용추도(鳥嶺龍湫圖)」 등 자료를 근거로 원 위치에서 30m 떨어진 곳에 정자를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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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향교
Address:
문경시 문경읍 교촌리 225-1
Description:
문경향교는 문경 읍내를 북쪽으로 벗어나 문경고등학교를 옆으로 돌아 조금 떨어진 곳의 경사가 심한 산자락에 주흘산을 배경으로 하여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언덕 높은 곳에 위치하므로 한눈에 문경 읍내를 바라볼 수 있으며, 앞으로는 신북천(身北川)이 흐르고 있고, 봉명산(鳳鳴山)이 솟아 있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있다. 대지는 삼단으로 조성되어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의 순으로 대성전을 최상단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방식을 취하였다. 명륜당과 내삼문 사이에 동재․서재를 직각으로 배치해 마주 보게 한 것이 문경향교의 특징이라 하겠다. 이 같은 배치는 대지가 협소하고 산자락의 능선이라 공사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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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정
Address:
문경시 산북면 내화리 353
Description:
산북(山北)에서 경천댐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산수정이 소재한 내화리(內化里) 마을이 나온다. 산수정은 마을 뒤쪽을 감아 도는 산줄기와 그 아래를 흐르는 작은 시내를 굽어보며 앉아 있다. 이 정자는 효종조(孝宗朝)에 사고(槎皐) 권극해(權克諧)가 창건하여 외손자인 지남(砥南) 김남일(金南一) 형제를 가르친 곳이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중앙에 2칸의 온돌방을 마련하고 양쪽 칸과 툇간에는 모두 마루를 깔아 온돌방을 에워싸는 형태를 취하게 하였다. 그리고 정면의 방문 위로 조그마한 환기창을 별도로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각 기둥 및 벽면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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