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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정
Address: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44-4
Description:
산북면 서중리(書中里)에 소재한 정자로 채익하(蔡翊夏)를 추모하기 위해 1900년대에 후손이 세워 현재까지 인천채씨(仁川蔡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정자이다. 이곳은 원래 채익하(蔡翊夏)가 제영을 붙이고 즐겨 유상한 곳이었다. 채익하의 호는 주암(舟巖)이며, 성균관 생원이었다. 채헌(蔡瀗)이 이름 한 석문구곡의 제2곡에 위치하고, 배 모양의 바위 위에 있으며 주변 연못과 더불어 경승을 자랑한다. 정자는 깎아지른 듯한 석벽 아래에 놓인 거대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데 이 바위가 영락없는 한 척의 배여서 주암이라는 이름의 연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그 앞쪽으로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따로 뚝 떨어져 나와 있어 실로 일대가 천혜의 경승지임을 실감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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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김씨종택
Address:
문경시 산북면 내화리 353
Description:
선성김씨종택은 내화리 입향조인 김단(1610~1680)의 장인인 권극해(權克諧)가 세운 것이라 전한다. 사랑채는 약간 개보수를 하였으나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안채는 김단의 5대 주손(胄孫) 낙룡(樂龍: 호 慕菴, 1790~1870)이 만년에 개축하였다. 종택 가까이에 사당이 있고 사랑채 앞에는 산수정(山水亭)이 있어 더욱 품격을 높이고 있다. 一자형 사랑채와 아래채, ㄱ자형 안채가 ㅁ자형 배치 구조를 이룬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사랑방 2칸과 사랑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루는 누마루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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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황씨종택
Address: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60-6
Description:
이곳은 장수황씨 사정공파 후손들이 500년 이상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곳이다. 이들은 곧 명재상 황희의 후손으로 황희 정승이 사용하던 벼루, 갓끈, 문진도 이 집안에서 보존해왔다. 황희의 고조부(장수황씨 중시조)는 전북 장수 사람이고, 황희는 개성과 한양을 기반으로 활동한 인물인데, 황씨 집안이 문경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는지 연유는 다음과 같다. 황희 정승의 둘째 아들 황보신이 상주에 내려와 살았다. 상주에서 문경 산북면으로 들어온 사람은 황보신의 손자 황정이다. 황정은 삼척부사를 지낸 아들 황사웅에게 재산 상속과 관련한 분재기를 작성하여 남겼다. 그 분재기가 아직도 황씨 집안에 전해오고 있다. 문경 장수황씨 집안은 입향조 황정의 호를 따라 사정공파라 이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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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서원
Address: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148-2
Description:
근암서원은 산북면 서중리에 있는 문경 지역 최초의 서원으로 홍언충(洪彦忠), 이덕형(李德馨), 김홍민(金弘敏), 홍여하(洪汝河), 이구(李구), 이만부(李萬敷), 권상일(權相一)의 7현(賢)을 배향한 서원이다. 1544년(중종 39)에 근암서당으로 창건되어 1669년(현종 10)에 근암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729년(영조 5) 명륜당이 중수되었다. 그러나 1868년(고종 5)에는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오다 1979년 사림과 후손이 모여 복원을 결의하고 1982년 현재의 모습으로 준공하여 전한다. 서원 철폐와 동시에 서원 관련 자료의 대부분이 일실(逸失)되었으나, 18세기 영남학파를 대표한 유학자인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과 관련한 유물이 일부 남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 내용은 권상일의 일록(日錄) 12책, 교첩(敎牒)·교지류(敎旨類) 70여 장, 전적과 유물, 그리고 근암서원 관련 책판(冊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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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정
Address:
문경시 산북면 이곡리 113
Description:
석문정(石門亭)은 근품재(近品齋) 채헌(蔡헌)이 만년의 풍월을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다. 채헌(숙종41년,1715~정조19년,1795)은 자는 계징(季澄), 호는 근품재(近品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영조 29년(1753)에 생원(生員)시에 급제하였으나 이후에는 다시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만년에 풍월을 벗 삼아 산수를 즐기고자 이 정자를 지었다. 정자의 위치는 산북을 지나 김용사 쪽으로 가다가 이곡리로 접어드는 초입에서 호계로 가는 고갯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위치한다. 천혜의 자연유원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경관이 매우 아기자기한 곳이다. 석문정기, 중수기 그리고 한글로 된 석문정가와 석문정구곡도가가 실린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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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고씨종택
Address:
문경시 산양면 녹문리 243
Description:
산양면 녹문리에 위치한다. 녹문리에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진사(進士) 고성겸(高聖謙)이란 인물이 있어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그의 문하생들이 스승의 호를 따서 마을을 녹문(鹿門)이라 부르던 것이 현재까지 마을 이름으로 전한다. 종택의 건립연대는 1800년대 말기로 추정되며 一자형 사랑채와 아래채 그리고 ㄱ자형 안채가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뒤에는 사당이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며 자리 잡고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을, 오른쪽에는 상방을 두었으며, 상방의 전면에는 온돌방 2칸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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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숙가옥
Address:
문경시 산양면 녹문리 246-3
Description:
이 가옥은 고몽익(高夢翊, 1780~1851)이 산양면 녹문리에 이주하면서 1828년(순조 28)에 건축하였다. 고몽익은 사예 고인계(司藝 高仁繼)의 6대손 고보(高補)의 여섯 아들 중 넷째로 그의 종반이 이 무렵부터 녹문리에 살게 되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의 사족 주택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ㅡ자형 사랑채와 ㄱ자 정침이 ㄷ자형 배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원래는 一자형 아래채가 있어 ㅁ자형을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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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숙가옥
Address:
문경시 산양면 녹문리 246-3
Description:
이 가옥은 고몽익(高夢翊, 1780~1851)이 산양면 녹문리에 이주하면서 1828년(순조 28)에 건축하였다. 고몽익은 사예 고인계(司藝 高仁繼)의 6대손 고보(高補)의 여섯 아들 중 넷째로 그의 종반이 이 무렵부터 녹문리에 살게 되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의 사족 주택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ㅡ자형 사랑채와 ㄱ자 정침이 ㄷ자형 배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원래는 一자형 아래채가 있어 ㅁ자형을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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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서당
Address: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123
Description:
산양면 반곡리(盤谷里) 영강가에 있다. 1574년(선조 7)에 처음 산양면 현리(縣里)에 세웠다. 백담 구봉령이 여기를 지나다 며칠을 유숙하게 되었는데, 이때 여러 선비가 청을 하여 존성당(尊性堂)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당하면서 전소되고 말았다. 그 후 1603년에 수계동(修契洞)에 중건하였다가 1687년(숙종 13)에 현 위치에 옮겨서 지었다. 1910년에 양 협실을 건립하였는데 왼쪽을 존성(尊性), 오른쪽을 진수(進修)라 하였다. 이후 사림 18문중이 관리, 운영해오면서 송조칠현(宋朝七賢)의 유영(遺影)을 봉안하였으며, 부훤당(負喧堂) 김해(金楷)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지은 기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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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서당
Address: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393
Description:
반곡리(盤谷里)에서 영순면 포내리(浦內里)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으며, 상당히 지대가 높은데도 야트막한 능선이 둘러싸고 있어 주변에 높은 산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정경이 평온하다. 서당 앞 관리 주택 외에는 주변에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위치상으로 반곡리와 포내리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양쪽 마을을 모두 배려하여 위치를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비탈면에 세운 덕분에 기단을 높게 축조한 후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을 올렸다.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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