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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정
Address:
문경시 산양면 봉정2리 476-8
Description:
산양면(山陽面) 봉정리(鳳亭里)에 있는 정자로 금수옹(錦繡翁) 노병국(盧秉國)을 위하여 장손인 희철(熙哲)이 1936년 세우고 봉정리 광산노씨(光山盧氏) 문중에서 현재까지 관리해오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노병국은 문간공(文簡公) 노수신(盧守愼)의 후손으로 관직은 침랑(寢朗)을 지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할머니 최씨를 모시는 데에서 병이 나 누워 있으면 향을 피우고 하늘에 축원하면서 대변의 달고 쓴맛을 보아 차도를 살폈다. 집이 가난하여 단맛을 이을 수 없으면 비바람을 가리지 않고 금천(錦川)에 나가 물고기를 낚시로 잡아 반찬을 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금수라 칭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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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헌
Address:
문경시 산양면 송죽리 471-2
Description:
변동식 가옥이 있는 진정리(辰井里) 마을에서 송죽리(松竹里) 쪽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야트막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죽헌이 보인다. 병조참의(兵曹參議) 여춘(余春)이 서식하던 곳에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여 1919년에 세운 정자이다. 여춘의 호인 죽헌(竹軒)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았다.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전면에 원주를 세웠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산양면 송죽리에 소재하며 송죽리 의령여씨(宜寧余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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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재
Address: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 109
Description:
이곳은 엄흥도(嚴興道)와 관련된 유적이다. 엄흥도는 영월(寧越)의 호장으로 당시 영월에 유배 중이던 노산군(魯山君: 단종)이 시해되자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낸 인물이다. 17세기 중반 이후 여말(麗末)의 충신, 사육신(死六臣) 등 충효에 대한 재평가와 대대적인 표창 사업을 하면서 엄흥도의 후손은 송시열(宋時烈)의 건의로 등용되었고, 그는 사육신과 함께 육신사(六臣祠)에 배향되었다. 1750년(영조 26)에 별묘(別廟)를 건립하였고, 이 사(祠)를 1833년(순조 33) 서원으로 승격하여 의산서원(義山書院)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서원은 대원군(大院君) 때 철폐되었고, 1900년 의산서원 자리에 상의재를 부설하였으며, 상의재는 의산서원의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1995년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02호로 지정되었다. 산양면 위만리(渭滿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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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사
Address:
문경시 산양면 위만리 474
Description:
엄흥도를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으로 산양면 위만리(渭滿里)에 있는 상의재 건너편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00년 의산서원(義山書院) 자리에 상의재를 건립하면서 또한 별묘를 지어 위패를 봉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충절사이다. 평면은 전면의 반 칸은 툇간으로 개방하고 내부는 통 칸으로 철하여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세웠는데 기둥의 상부는 이익공으로 장식하였다. 상의재와 더불어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만리(渭滿里)의 영월엄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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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청정
Address:
문경시 산양면 존도리 236
Description:
이 정자는 1739년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이 세우고 이름을 존도서와(尊道書窩)라 하였다. 그러나 1808년에 화재로 소실되고 존도서와라는 편액만 화재를 면하였다. 그 후 1863년에 다시 세우니 지금의 농청정이다. 권상일(1679~1760)은 자가 태중(台仲)이며, 호는 청대이다. 1710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副提學)으로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이곳은 특히 채헌(蔡瀗)이 경영하던 석문구곡(石門九曲) 원림(園林)의 제1곡에 해당하는 곳으로 그 의미가 자못 심장한 곳이다. 정자는 금천(錦川) 수면 위로 곧바로 솟아오른 석벽 옆의 높직한 암반 위에 다시 얇게 석축을 쌓아 고른 평지 위에 올라 앉아 금천의 물줄기를 조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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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식가옥
Address:
문경시 산양면 진정리 118
Description:
문경 변동식 가옥은 산양면 진정1리 118번지에 위치하며, 1934년 변봉규(卞鳳奎)와 그의 아들 변종태(卞鐘泰)와 함께 건립한 전통 한옥 건물이다. 일제강점 말기에 건축된 이 가옥은 전체적으로는 전통 목조 수법에 따르면서 일부에 유리 창문과 좁은 통로, 볼트ㆍ너트 접합 등과 같은 근대건축의 세부 양식을 접목하고 있다. 이 지역의 토착 주거 문화에 근대 양식의 일부를 수용한 주택으로 지역의 역사ㆍ문화 변동을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사례로 평가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변으로 현대식 주택에 둘러싸여 있어 마을 전체가 토속적인 정취를 거의 잃고 있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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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정
Address:
문경시 영순면 김용리 269-1
Description:
영강(潁江)을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한 영순면(永順面) 김용리(金龍里)에 위치한 정자이다. 월봉(月峯) 고인계(高仁繼)가 인조(仁祖)가 개옥(開獄)한 뒤에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이후에 이곳에 정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71년 주손인 택룡(宅龍)이 중건한 것이다. 정자 주위에는 방형 흙과 돌로 쌓은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 전면에 두 칸 규모의 대문채와 왼쪽에 협문을 설치하였다. 경사진 곳에 위치하므로 전면 주의 하부에는 하층 주를 세워 전면의 툇간을 누마루로 이루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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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정사
Address:
문경시 영순면 사근리 88
Description:
영순면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사근리(沙斤里) 무림동(茂林洞)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도로가 나온다. 이 정사는 1590년경 북헌(北軒) 신섬(申暹)이 세웠으나 임란 때 불에 타서 없어졌다. 하지만 1939년 후손들이 무림동의 남산 산허리에 다시 세우고 무림정사라 편액하였다. 경사진 대지 위에 건립하여 앞면의 원주 하부에 팔각형의 하층 기둥을 세워 전면의 툇간을 누마루로 이루게 하였다. 평면은 어간의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한 칸씩을 준 형태이다.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으며, 툇간 주위에는 계자각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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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재
Address: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839
Description:
청산재는 영순면 의곡리(蟻谷里)에 위치하며, 문화재 자료 제483호(2005년 6월 20일 지정)로 지정되었다. 우암(寓庵)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재사(齋舍)인 이곳은 조선 전기 외손봉사(外孫奉祀)의 좋은 예로써 문화적 의미가 있다. 청산(靑山)이라 이름 한 것은 선생 자신이 지은 만사(輓詞) 중에 있는 청산재상(靑山在上)을 사용하였으며,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400여 년 전에 외손인 검간(黔澗) 조정(趙靖)이 창건하였다. 그 평면 구성은 재사와 재(齋)ㆍ정(亭)ㆍ당(堂)ㆍ정사(精舍)의 유형 중에서 가장 앞선 형태에 속하며, 기능상으로 정자 역할을 겸한 재사이다. 건축 연대를 18세기 이전으로 올려볼 수 있는 평면 형식과 고식의 창호 중간에 기둥을 세워 창문이 두 개처럼 보이게 한 영쌍창(楹雙窓) 등의 건축 수법이 남아 있다. 따라서 지방 사림과 사대부 건축의 유형과 양식 편년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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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달신도비
Address: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산5
Description: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산5에 위치하고, 영순면에서 풍양면으로 가는 길가에 있으며, 시․도 유형문화재 122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 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연산군 때 문신인 홍귀달(1438∼1504)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그는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홍귀달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왕에게 잘못된 정치를 고치도록 간언하다 낮은 벼슬로 좌천되었다. 1504년(연산군 10) 경원 지역으로 유배를 가던 도중 단천 지역에서 교살되었다. 중종반정 이후 그의 명예가 회복되어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숙종 때 ‘문광’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서 읽기 힘든 상태이나, 다행히도『부림홍씨 세덕록』에 그 원문이 실려 있다. 1535년(중종 30)에 세운 비로, 대제학을 지낸 남곤이 글을 짓고, 아들인 홍언국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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