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고서재,만산재
Address:
문경시 점촌3동 98-1
Description:
존양문(存養門)이라 편액한 대문을 들어서면 좁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영고사(潁皐祠)와 영고서재(潁皐書齋)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이 문과에 급제하여 예천(醴泉)·풍기(豊基) 군수를 역임하고, 광해(光海)의 정란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며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영고서재는 태촌 고상안이 만년에 은거하던 곳에 건립한 서재로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1845년에 중건되었다. 영고사는 고상안과 그의 손자인 낭옹(浪翁) 고세장(高世章)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한 묘실로 1868년에 훼철된 것을 1992년에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중건하였다.
-
죽림정
Address:
문경시 호계면 우로2리 290
Description:
죽림정은 행정구역상 문경시 호계면 우로2리에 위치해 있다. 문경읍으로 가는 옛길로 영강 둑길을 달리게 되는 국도 34번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5여 분을 달리다 둑길이 끝날 즈음에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 호계이며, 호계를 바로 지나면서 나타나는 마을이 곧 우로리이다. 이곳은 또 특별히 주진(舟津) 또는 뱃나들이라 하는 곳으로 그 이름처럼 조그마한 강나루를 형성한 곳이었다. 강물에 연접하여 아담한 봉우리가 절벽을 이루며 앉아 있고, 그 아래 배가 드나들던 나루 역할을 하던 곳이며, 바로 옆으로 죽림정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현재 현지에 살고 있는 청주정씨 문중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세상의 분화를 피하여 이곳에 우거한 죽림재(竹林齋) 정방시(鄭邦時) 선생을 추모하려고 세운 정자이다.
-
지락헌
Address: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1리 영강변
Description:
지락헌은 진잠현령(鎭岑縣令)을 지내고 산양(山陽)에 입향한 변계흠(卞季欽)이 세웠고 나재(懶齋) 채수(蔡壽)와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이 기문을 지었다. 1997년에 보수하고 후손 용규(龍奎)가 기문(記文)을 지었다. 변계흠(1369~1430)은 본관이 초계(草溪)로 진잠현령을 지냈으며 청주(淸州)에서 산양으로 옮겨와 시와 술을 즐기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지락헌의 소재지는 호계면(虎溪面) 봉서리(鳳棲里)이다. 건축 연대를 살펴보면 1482년에 지락헌과 남쪽에 징파루(澄波樓), 북쪽에 광원대(曠遠臺)를 세웠으며, 1935년에 지락헌을 중건하였고, 1997년에 개·보수하여 진정리(辰井里) 초계변씨 문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
송암서당(松巖書堂)
Address:
상주시 외서면 관동리 407(안깃골)
Description:
송암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상주 서쪽 도솔산(兜率山) 서쪽 기슭에 있었다. 임란 때에 불에 타 없어졌다가 김혜(金寭)가 다시 복원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이 마을 이름을 서당골이라고 한다. 1946년에 상산김씨들의 건의로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고, 관동리 안깃골 마을 뒤편에 서남향으로 아담하게 자리하며, 뒤로는 산을 지고 전면으로는 넓은 들판이 바라보인다. 매년 음력 11월 20일에 상산김씨와 문화유씨 두 문중이 모임을 갖는다.
-
이천서원(伊川書源)
Address:
상주시 외서면 이천리 208(서당마)
Description:
997번 지방도로를 따라 외서면에 이르기 전 봉강교 사거리에서 오른쪽을 향해 약 200m쯤 가면 조그만 저수지가 나온다. 이천서원은 이곳 서당마을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쪽의 산기슭에 시멘트 블록으로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동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아담한 규모로, 가운데 1칸은 마루방이며 양쪽은 온돌방이다. 시멘트로 반듯하게 기단을 쌓고, 전면에 툇마루를 깔았다. 온돌방 옆면에도 쪽마루를 깔았고 헌함을 돌려 누마루처럼 꾸몄다. 서당 뒤편에는 대나무 밭이 있고 전면으로는 못을 건너 넓은 들이 바라보인다. 전면에는 일각문을 두었다.
-
병암고택
Address: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12(하우산)
Description:
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다가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우복종택이 있다. 여기에서 이안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약 1km지점의 도로 오른쪽에 우복 선생의 6대손인 입재 정종로의 아우인 통덕랑공(通德郞公)인 정재로(鄭宰魯)가 1770년(영조 40)에 지은 주거용 건축물이다. 현재는 지방문화재로 보존이 되고 있는데 현판의 `병암(甁庵)`은 진사를 지낸, 부 정철우(鄭喆愚)의 호를 따서 붙인 당호(堂號)이다. 병천정(甁泉亭)이라는 현판은 정동두(鄭東斗)가 1840년경 우산고개 계곡에 지은 정자에 있던 것인데, 1982년에 정자를 허물면서 이곳으로 기져온 것이다.
-
우복종택(愚伏宗宅)
Address: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93-2
Description:
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면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대산루와 계정, 우복종택, 도존당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우복종택은 1982년에 경상북도 지방 유형민속자료 제31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지금 주소로는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93 - 2번지이다. 대산루의 남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영조가 정경세의 덕을 기려 하사한 터에 5세손인 정주원이 175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택 양쪽에는 불천위사당이 2개 있는데, 상주지역에 남아있는 종택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 중의 하나이다.
-
대산루 · 계정
Address: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93
Description:
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면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대산루와 계정, 우복종택, 도존당 등이 한 곳에 있다. 이 가운데 대산루와 계정은 1982년에 경상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56호로 지정이 되었는데, 지금 주소로는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93-1번지이다. 1600년경에 우복 정경세가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인데, 우북산(于北山) 아래에 우복동천이 있고, 대산루와 계정 그리고 왼편으로 올라가면 우복종택이 있다. 여기에서 또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산 밑에 우산서원이라고 일컫는 도존당이 있다. 이곳의 경치가 빼어나서 우복 선생은 이곳 경치를 우곡잡영이십절(愚谷雜詠二十絶)이라는 제목으로 노래하였다.
-
도존당
Address: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산189
Description:
상주시청에서 대전방향으로 가다가 내서면에서 북장사 방향으로 가면 우천냇가가 나오는데 그곳에 우복 정경세의 유적지인 대산루와 계정, 우복종택, 도존당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도존당은 대산루와 종가의 가운데로 터진 길을 따라 2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있다. 대산루의 뒷쪽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영조가 정경세의 덕을 기려 하사한 터에 5세손인 정주원이 1750년대에 지금의 종택을 건립한 이후에 종택 뒤에 입재 정종로가 1808년에 강당을 세웠다가 1834년에 우산서원이 된 곳이다. 지금은 서원철폐령이 내려서 훼철된 이후 도존당만 남아 있다.
-
동원정(同源亭)
Address: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271(띠실)
Description:
문경시(聞慶市) 농암면(籠岩面)과 접경한 곳에 위치한 동원정(同源亭)은 은척면(銀尺面) 두릉(杜陵)마을 용산(龍山)아래에 있다. 기념물 제 7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 건너편 산허리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곧장 바라다 보인다. 이 정자는 동원정(同源亭) 류광원(柳光源)이 1746년에 건립한 것이다. 동원정은 부모님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이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마을의 선비들과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이곳에서 창작된 시 중에는 예재(藝齋) 채시주(蔡蓍疇)와 근와(近窩) 류식(柳栻)의 시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마을 서편에는 기념물 제 1호인 뽕나무가 연륜을 자랑하며 서 있다. 띠실 마을이 형성되면서 심어진 것이라 한다.
검색된 데이터가 없습니다.
검색된 데이터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