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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정(觀水亭)
Address:
상주시 공검면 지평리 39
Description:
상주시 공검면 공검지에서 이안 방면으로 약 10km 가면 상주시 공검면 장계촌 북쪽 기산(箕山) 아래 관암(冠巖)에 관수정이 자리하고 있다. 관수정이란 이름은 ‘물을 보다’라는 뜻인데, 280여 년 전 취재헌(醉在軒) 우성일(禹成一)과 만취당(晩翠堂) 우성백(禹成栢) 형제가 경치 좋은 이곳을 찾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정자를 세워 글을 읽으며 휴양하였다. 그 후로 여러 곳의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풍류를 즐기며서 유람의 명소가 되었다. 1940년에 중수하였다. 홍재조(洪載祚)의 기문과 변인규(卞仁圭)의 중수기문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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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간정(聽澗亭)
Address: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4(운곡)
Description:
청간정은 1655년경 가곡(柯谷) 조예(趙秇)가 지은 정자이다. 운곡리 마을 입구에서 의암고택(依巖古宅)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 가면 보호수로 지정된 5백년 수령의 큰 은행나무 한 그루 옆에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앞으로는 가뭄을 모르는 국사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사철 흐르고, 동네 가까이 있으면서 자리한 곳이 그윽하고 아늑하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토석 담장이 네모로 반듯하게 쌓여 있는 가운데에 일각문이 세워져 있고, 안에는 좁은 안마당 뒤편에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아담한 정자이다. 누 아래의 기둥은 네모이고, 누 위의 기둥은 둥근 기둥으로 칡기둥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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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고택(依巖古宅)
Address: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41-1(운곡)
Description:
운곡(雲谷) 마을 가운데에 위치한 의암고택(依巖古宅)은 모임당(慕任堂) 연안이씨(延安李氏)가 지은 건물이다. '의암(依巖)'은 조범구(趙範九)선생의 호로서, 의암고택이라는 당호는 후대인이 의암 조범구 선생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붙인 건물명칭이다. 이 집으로 드나드는 대문 앞에 있는 탕건 모양의 큰 바위를 '탕건석'이라 하는데, 관습적으로 사람들이 이 탕건석을 '의암'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의암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서, 정침(안채)과 사랑채, 안사랑채, 고방채, 대문간채, 사당, 뒤주채, 장독대 등 조선 시대 사대부 주택의 구성 요소를 고루 갖춘 집이다. 1986년 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제17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10월(경상북도 고시 2012.10.22)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53호 '상주의암고택'으로 승격지정 되었다. 이 운곡마을에는 의암고택 이외에도 청간정(聽澗亭)과 송동재(松洞齋), 경모재(敬慕齋), 만송재(晩松齋) 등의 재실들, 유신당(維新堂), 양교당(養敎堂), 경신당(敬愼堂) 등의 고가들 및 공동우물, 막돌 담장, 초가와 서낭당 등 양반과 서인이 공동 주거하던 유적들이 산재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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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양진당
Address: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214-3번지
Description:
낙동강과 접한 낙동면에 위치한 양진당은 검간 조정 선생이 지은 민가 안채이다. 조정은 조선시대 선조와 인조 때의 학자로 한강 정구,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양진당은 종가에서 선조를 기리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건립되었으며, 친인척간의 친목 도모와 독서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이 건물은 약간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원래는 99칸의 ‘ㅁ’ 자 형의 집이었다. 그 후 부속건물은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좌우가 약간 다른 ‘ㄷ’ 자 형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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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당(悟昨堂)
Address: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132-2
Description:
916번 지방도로 옆에 위치한 오작당(悟昨堂)은 일명 구당(舊堂)이라고도 하는데, 검간(黔澗) 조정(趙靖)의 종가로 처음은 선조를 추모할 목적으로 지은 집이다. 1601년(선조 34) 양진당 자리에 지었다. 1661년(현종2년) 조대윤(趙大胤)이 은천(恩泉)의 새터(新基, 승곡리 자연마을)로 이건하였으며, 이건 당시는 내사, 외사 모두 40여 칸이었으나, 1781년(정조5)중수 시에 겹집과 홑집이 공존하는 건물이 되었으며 양진당의 원초형이다. 부재(部材)의 세장(細裝)한 조각, 기둥의 모접과 격자창 등은 옛날 집 형태의 느낌을 더한다. 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 등 3동이 남아 있다. 오작당을 처음 이건한 입재(立齋) 조대윤(趙大胤)은 문명(文名)을 얻은 선비였으며 특히 일가의 친목을 도모하려 목연(睦姸)이란 계를 조직하여 가문의 흥창을 도모한 선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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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정사(龍山精舍)
Address: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132-2
Description:
용산정사는 일명 '와연당(臥淵堂)'으로 불리는데, 갑장산 구룡의 한 줄기가 동으로 뻗은 곳에 위치한다. 당호를 와연당으로 한 것은 대청마루에 누워서 집 앞 연못을 한가로이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3년 지방문화재자료 제438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1849년(헌종 9년)에 지었으며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과 반 중층 누각형식으로서 주두와 주간(柱間)사이에는 소로가 설치되어 있다. 민도리 양식이며 전면 반 칸은 툇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난간대가 형성되어 있다. 19세기 이후 섬세한 건축 형식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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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곡리추원당(升谷里追遠堂)
Address: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237
Description:
승곡리추원당(升谷里追遠堂)은 1759년(영조35)에 건립되고 1945년과 1975년에 중수하였다. 사림의 결정에 의해 2007년 12월 8일 추원당을 장천서원(長川書院)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장천서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기 이전의 추원당은 검간(黔澗) 조정(趙靖)선생을 모신 재사로서의 성격을 띤 건물이었으나, 장천서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묘우(廟宇)인 경모사(景慕祠)에 만은(晩隱) 조윤녕(趙允寧), 검간(黔澗) 조정(趙靖), 가규(可畦) 조익(趙翊) 세분을 배향하였고 서원으로서의 건물 특성들을 완전히 갖추게 되었다. 강당은 1952년에 이건한 건물로서 전체적인 형태가 양호하다. 양식은 정사(精舍)에 주로 사용하는 고상식(高床式)형태를 취하고 있다. 묘우인 경모사에는 야간 제향 행사시 관솔불을 밝히도록 설치해 놓은 정료석(庭燎石)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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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정(玉流亭)
Address: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652
Description:
옥류정(玉流亭)은 낙동면 승곡리 652번지 승장 폭포 옆에 있다. 갑장산 구룡연(九龍淵)에서 발원한 물이 승장계곡을 지나며 수 십 길의 옥류폭포가 되어 흐른다. 사방으로 토석 답장을 두르고, 전면에 드나드는 문을 내었으며, 남서향으로 정자를 세웠다. 옥류정이 위치한 상류 쪽이 절경이며 고려 시대에는 승장사(勝長寺)가 이곳에 있었다. 김상직(金尙直)이 쓴 「승장사 중창기」에 충렬왕(忠烈王)이 잠시 이곳에 머물렀다 하며, 이 때 ‘영남의 으뜸산’(甲長山)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검간 조정(1552∼1636)이 어려서 이곳 암자에서 독서하였기에 이를 기념하여 세운 정자다. 승장폭포의 장관과 상산 사장사(商山四長寺 · 甲長, 勝長, 南長, 北長寺)중의 하나인 승장사가 자리했던 곳이다.四長寺 · 甲長, 勝長, 南長, 北長寺)중의 하나인 승장사가 자리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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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서당(修善書堂)
Address:
상주시 청리면 청하리 451
Description:
수선서당은 상주 목사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상주 남쪽 수선산 아래 유람 왔다가 산수의 풍광이 좋아 지방의 부로들과 상의하여 서당을 짓고 손수 수선서당 네 자를 써서 현판으로 걸었다. 임란 때에 불에 타 없어졌다가 1603년 다시 중건하였다. 청리면에서 청리초등학교 옆으로 낙동면으로 가는 912번 지방도로 따라 가면 유달리 감나무가 많은 곳에 “감 체험 마을”이라는 큰 입간판이 서 있다. 거기에서 왼쪽 하현 마을에 서당이 자리 한다. 청상저수지를 쌓고 길을 새로이 내느라 서당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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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화당(棣華堂)
Address:
상주시 청리면 가천리 650
Description: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가천리에 있다. 청리면 소재지를 지나서 김천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마공논공단지에서 오른쪽으로 가서 유천(酉川)을 건너면 서산 아래에 있다. 체화당은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는 말인데 월간(月澗) 이전(李㙉)과 창석(蒼石) 이준(李埈)두 형제간의 우애가 아주 특별한 것을 가지고 이전의 셋째 아들이 이신규(李身圭)가 1632년에 지었다. 체화당은 정면 4칸이며, 측면 2칸 반의 팔작지붕이다. 외문을 통해 들어가면 체화당이 있고, 체화당 뒤에는 월간사당이 있다. 월간사당은 정면 3칸이며 측면 한 칸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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