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애원(存愛院)
Address:
상주시 청리면 율리 353(동산밑)
Description:
상주시 청리면 율리에 위치한 존애원은 조선시대 상주 지역의 사설 의료기관이었다. 이 병원은 정경세(鄭經世)가 임진-정유왜란 직후 경상도관찰사에서 물러나 1599년 가을 고향에 머무르고 있을 때, 성람(成濫), 이준(李埈) 등과 창설하였고, 1602년(선조 35) 상주지역의 여러 선비들이 협조하여 약재와 진료시설을 구비하였다. 이 명칭은 정자(程子)의 ‘존심애물’(存心愛物)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정경세의 주도하에 의약실무는 성람이 담당하였고 약재 보관창고와 환자수용시설인 당우는 마을 사림의 도움으로 지어졌다. 의료시설이 극히 미비했던 당시 많은 약재와 시설을 갖추고 향촌 주민을 구제했던 의미 깊은 장소이다. 지금은 13개 문중에서 공동 관리해 오고 있으며 1993년 경상북도 문화재 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
효곡서원
Address: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용신리 324-1
Description:
공성면 소곡리에 자리한 효곡서원은 1685년(숙종 11)에 우곡(愚谷) 송량(宋亮)을 배향한 세덕사(世德祠)로 창건되었으나, 1735년(영조 11)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毁撤)되었으며, 1931년 강당이 중건되었으며, 1968년에 지방 유림에 의하여 묘우가 복원되었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덕사(崇德祠)와 4칸의 효곡강당, 신문, 고직사 등이 있다. 사우인 숭덕사에는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량(宋亮)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그 뒤 김충(金沖), 고인계(高仁繼), 김광두(金光斗)를 추향(追享)하였다. 강당인 효곡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
귀후재
Address:
상주시 공성면 우하리 37(관촌)
Description:
귀후재는 공성면에서 모동면으로 가는 920번 지방도로를 따라 상판(上板) 저수지 조금 못미처 관촌 마을에 자리한 건물로, 장수황씨(長水黃氏) 소윤공파(少尹公波) 묘하 재실이다. 귀후(歸厚)'란 증자(曾子)가 “윗사람이 조상을 잘 섬기면 백성들이 후덕하게 된다”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 전면에는 솟을삼문이 웅장하게 서 있고, 안에는 넓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양익사가 대칭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북쪽에 재실이 위치해있다. 재실은 정면이 4칸 측면 2칸 반의 규모이다. 가운데 2칸은 마루방이며 양쪽은 온돌방이다. 온돌방 앞 쪽마루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양익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규모의 아담한 규모이다. 양익사의 마루는 방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
-
효곡재사
Address:
상주시 공성면 효곡리 516(재사동)
Description:
공성면에서 모동으로 가는 68번 지방도로를 가면 상판(上板) 저수지 조금 못미쳐 효곡재사 이정표가 붙은 삼거리가 나온다. 저수지 우측으로 산길을 따라 효곡리에 이르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작은 이정표를 따라 가면 마을 맨 위쪽에 우뚝 솟은 효곡 재사를 볼 수 있다. 재사는 우곡(愚谷) 송량(宋亮)선생의 높은 덕을 기리기 위하여 증손 송영(宋穎)이 현종 대에 건립한 건물로 추정된다. 17세기 후기의 건물로서는 가운데 설주 연귀마춤 등의 나무를 다듬어 지은 수법이 건립연대와 부합되는 뛰어난 건물로 평가된다.
-
백화서당
Address:
상주시 모동면 금천리 372
Description:
모동면 금천리 산금마을에서 북쪽으로 포도밭 사이에 있는 백화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모동초등학교 뒤로 돌아 논길을 따라 가면 어렵게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수봉리 신덕마을에 있었으나, 1701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이 서당은 훗날 옥동서원을 건립하게 된 주체 서당으로, 학문에 전심하여 학문의 도를 새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신덕(新德)리에 처음 세운 것이다. 예전에는 황희(黃喜)의 영정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장수황씨 등 3개 문중이 참여하여 이건하였다. 그 후 격년제로 음력 7월에 모임을 갖고 서당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정면에 보이는 흙담은 왼쪽이 무너져 있다. 시멘트로 기초를 만든 뒤 건물을 세우고 지붕은 골슬레이트를 이었다. 마루 안쪽 위에 명륜당 현판이 덩그렇게 걸려있다.
-
옥동서원
Address: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546
Description:
옥동서원은 1580년(선조 13)에 방촌 황희의 영당인 백화서원이 그 모태이다. 1714년(숙종 40)에 전식을 배향하고 서원으로 승격된 곳이다. 서원이 있는 수봉리는 중모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오다가 입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백화산과 만경산 사이로 흐르며, 뒤쪽으로 만경산을 등지고 전면은 모동 들판이 넓게 트인 곳에 자리하고 있다. 1789년(정조 13) 영남의 사림에서 사액을 청하는 소를 올려 조정에서 승지 박천형을 보내어 제사를 올리고 ‘옥동’이라 사액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문루는 청월루이며, 묘우는 경덕사이다. 강당은 온휘당이며, 좌우의 작은 방은 착로재와 탁장재이다.
-
봉암서당
Address: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 724(서당마)
Description:
화동면 선교리 서당마을에 위치한 봉암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선교리 대하마을을 지나 산골로 접어들다 보면 왼쪽에 가는 길이 보인다. 서당 주변에는 겨우 몇 채의 가옥만이 남아있는 산골마을이 있다. 현재 서당 건물은 수리가 완전히 끝나 넓은 담장 안에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서당 뒤편 양쪽에 은행나무가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이 건물 동쪽 약 20m 지점에도 같은 현판이 있는 서당 건물이 있다. 붉은 색을 칠한 기와집이라 처음에는 지나치기 쉬우나 오히려 규모는 조금 더 크다. 좌측 온돌방 위쪽에 명륜당(明倫堂)이라는 현판이 크게 걸려 있으며, 중앙 마루 뒤쪽 위에는 상량문을 기록한 현판이 걸려 있다. 앞의 작은 개울과 주변의 높은 산이 적막감을 돕는다.
-
선교리 추원당
Address:
상주시 화동면 선교리 543-3(대하)
Description:
선교리 대하 마을 가운데 위치하며, 낙안군수(樂安郡守)와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역임한 풍양조씨(豊壤趙氏) 조형원(趙亨遠)을 비롯한 후손들의 문중재사이다. 붉은 벽돌로 담장을 둘러져 있으며, 대문 칸 또한 현대식으로 되어 있으며, 문은 스테인레스 봉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안에 동남향으로 자리하며, 담장 안 모서리에 굵은 향나무가 서 있다. 건물 구조는 정면 4칸에 측면 2 칸 규모이다. 중앙 2 칸은 마루이며, 양쪽으로 온돌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 구조이다. 지붕의 중도리 간격이 매우 좁게 되어 있으며, 창호와 고식의 문틀이 특이하다. 마루에는 언제 누가 사용하였을 지 알 수 없는 나무로 제작된 가마가 손잡이가 떨어진 채로 놓여있다.
-
제단비 및 낙화담
Address:
상주시 화동면 판곡리 476
Description:
판곡리(板谷里) 청도 김씨 세거지에 세워진 제단비(祭壇碑)는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으로 활동한 김준신(金俊臣)을 추모하기 위하여 1850년(철종 1)에 세워졌다. 이후 비각 앞에 첨모재(瞻慕齋)를 세워 추모하였다. 1995년 12월 1일에 기념물 제 113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낙화담은 원래 1,500여 평이나 되는 못이었으나 지금은 150평 정도의 적은 연못인데 못 가운데에 작은 동산을 만들고 그 동산 위에 수 백 년 묵은 노송이 한 그루 서 있다. 이 못은 백화산이 화성을 띄우고 있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그 화기를 중화시켜야 한다고 믿어 마을 사람들이 만들게 된 못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병이 판곡리를 침입하였을 때, 이 못에 부녀자들이 투신자살 하였으므로 이때부터 낙화담이라 불리어 졌다.
-
어만각(御挽閣)
Address: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 135
Description:
화동면에서 옥천방면으로 10km정도 가면, 평산리 산기슭 덧질 마을 입구에 있는 저수지의 맞은편에서 어만각(御挽閣)을 볼 수 있다. 세종이 개국공신 신유정(辛有定)에게 내린 만사를 목판에 조각하여 게시 보존한 곳이다. 신유정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형조, 예조, 공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태종 때는 여진을 소탕하는 큰 공을 세웠다. 네모진 담장 안에 어만각과 기문각이 나란히 남향으로 서 있다. 어만각은 정면 1 칸, 측면 1 칸 반의 다포맞배집이다. 태극무늬의 문이 있고, 그 위로는 용 그림으로 단청이 되어 있다. 작은 건물에 비해 공간포 수나 튀어나온 나무들이 과도한 느낌을 준다. 기문각은 둥근 기둥에 살대를 세운 단칸 기와집이다. 담장 밖에는 사적비 세기가 나란히 서 있다.
검색된 데이터가 없습니다.
검색된 데이터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