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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관(商山館)
Address:
상주시 만산동 산73-1
Description:
상산관은 상주 읍성 내에 건립되어 있었던 객사이다. 상주를 방문하거나 지나치는 사신들이 숙소로 사용하거나 공무로 출장 중인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이외에도 목사가 부임하면 이 고을에서 별탈 없이 근무하기를 빌고, 매월 1일과 15일, 또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대궐을 향하여 망배례를 올리기도 했던 곳이다. 상주의 객사는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196년(고려 명종 26) 이규보(李奎報)가 상산관에서 선비들과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현존하는 객사 중 가장 오래된 곳 중의 하나일 것이다. 여러 차례 중수나 중건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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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천정(枕泉亭)
Address:
상주시 만산동 703
Description:
이 정자는 처음 상주 관아의 남쪽에 정곤수(鄭崑壽)가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연꽃이 있던 못의 옆에 세워 이름을 연당(蓮堂)이라 하였으며, 공무에 시달리던 관리가 휴식을 취하던 관정이었다. 그 후에 못에 홍련과 백련이 있어 이름을 이향정(二香亭)이라 하였다. 1910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라 상주읍성이 헐릴 때에 이 정자도 헐리게 되었으나, 뜻있는 지방민들이 사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이때에 이름을 침천정으로 하였다. 상주의 식수원인 북천이 정자 앞을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으며, 가까이에 상주 시내 전경이 훤히 보이는 임란북천전적지 안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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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루(太平樓)
Address:
상주시 만산동 703
Description:
태평루는 상주의 임란 전적지인 북천 전적지의 외삼문을 지나면 곧장 언덕위로 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있다. 원래는 상주 아문의 내삼문 밖에 건립하여 동헌의 문루로 사용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상주 향교 동편의 산으로 이건하였다. 1960년대에는 상주 향교안으로 이건하여 남산 중학교의 강당과 음악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90년 임란 북천 전적지 정화 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원래 목적인 문루는 아니지만 자양산 동편의 중턱에 늘씬하면서도 웅장하게 상주 시내를 굽어보며 옛 날의 위용을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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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정사, 천운당
Address:
상주시 외답동 167-1(논실)
Description:
천운정사는 상주시 외답동에 자리한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정자이다. 중부내륙고속국도 상주 IC를 빠져 나와서 시내 쪽으로 약 200미터 가다가 좌회전하여 마을 안으로 올라가면 식산이 나오는데 천운정사는 그 식산 아래에 있다. 식산 이만부는 1697년에 서울에서 상주로 이거하여 천운정을 짓고는 독서와 교육, 선비의 집회 장소로 사용하였다. 이 정사의 원래 이름은 천운당으로 1700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천운당보다는 천운정으로 널리 알려졌다. 1846년과 1892년에 중수하였고, 1893년 5월에는 천운당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서 사림에서 계를 조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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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서원(道南書院)
Address:
상주시 도남동 175
Description:
낙동강 전 구간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곳은 사벌면 퇴강리와 낙동진 나루터 사이의 구간이다. 층암절벽을 이루는 비봉산의 기암절벽을 바라보며, 밑으로 넘실거리며 흐르는 강물과 넓은 은백색 모래밭이 바라보이는 곳에 도남서원이 위치한다. 영남출신의 대유학자 다섯 분을 배향하여 정주학의 정통임을 강조하였는데 현재는 아홉 분을 배향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7년 후인 1605년에 큰 전란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후진양성을 위하여 상주의 사림 송량 등 8인이 주창하여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1676년에 사액을 받았으나 1871년 훼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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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서당(道谷書堂)
Address:
상주시 서곡동 산38
Description:
도곡서당은 1553년(명종 8) 상주 목사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이다. 건립 당시의 건물이 남아있는 서당이다. 후계(后溪) 김범(金範)이 은거하며 학문을 익히며, 후진을 교육하던 장소이다. 서곡동(書谷洞) 서당골 마을 동쪽의 도림원 남쪽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에 화재로 소실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인근 마을의 8문중이 경비를 내어,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로 중건하였다. 여러 차례 중수하여 당시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다. 서당 옆에 고직사가 자리하며, 주위에 나무가 우거져 시원한 분위기를 맛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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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향교
Address:
상주시 신봉동 203-1
Description:
상주시청에서 남쪽 방향으로 약 300미터 지나서 현대아파트 맞은편으로 올라가면 남산 자락에 상주향교가 있다. 1426년(세종 8)에 판목 조치(曺致)가 남루를 세우고 1485년(성종 15)에는 목사 강구손(姜龜孫)이 성전과 재루를 중창하였다고 한다. 상주향교는 경주향교와 더불어 대설위 향교로서, 1966년에 우리나라 18현과 송나라 2현의 위패를 추존하였다. 대성지성 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공자)의 위패를 전면에 모시고 사성(四聖) 위패를 양쪽에 두어 총 2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배치는 산자락의 경사지를 3단으로 기초를 만들고 맨 앞쪽부터 외삼문과 통로, 강학 공간, 제향 공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외삼문-명륜당-내삼문-대성전이 일직선을 이루고 고직사는 동재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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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서원(鳳崗書院)
Address:
상주시 신봉동 270(신봉)
Description:
봉강서원은 상주의 대표적인 사족인 진주강씨 집성촌 봉대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의 조정에서 여섯 번이나 불러도 나가지 않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강회중(姜淮仲)과 연산군 때에 폭정을 직간하다 갑자사화로 네 부자가 참화를 당한 강형(姜詗)을 배향한 서원이다. 상주 시내를 벗어난 남쪽에서 안산인 갑장산을 마주보며, 상주고등학교 동쪽으로 약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원래 강씨들이 세운 경덕사(景德祠)였으나 대원군 때 철폐되었다가 1977년 사림들의 발의로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봉강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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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악서원(淵嶽書院)
Address:
상주시 지천동 628
Description:
연악서원은 명종 연간에 상주 목사를 지낸 신잠(申潛)이 세운 18개 서당 중의 하나인 지천서당이 승격되면서 이름을 바꾼 곳이다. 서당의 강당을 그대로 사용하고, 강당 앞개울을 건너 묘우인 창덕사(彰德祠)를 북향으로 세웠다. 상주남부초등학교 옆으로 갑장산 계곡을 따라 질구내 마을 안에 위치한다. 갑장산 자락에 동에서 서로 남천에 잇닿은 길게 뻗은 소나무 숲과 갑장산에서 흘러내리는 계류가 바로 서원 앞을 지나며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시문과 창작활동이 왕성하던 곳이다. 당시에 이곳에서 개최되었던 시회의 기록을 정리한 <연악문회록>이 보관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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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서원(玉成書院)
Address:
상주시 외남면 신상리 104
Description:
옥성서원은 신잠(申潛)이 상주 목사로 부임하여 세운 18개의 서당 중의 하나인 수양서당(首陽書堂)이 그 모태이며, 1633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48년 수해로 옥성서원이 있던 서산이 무너져 서원이 묻혀버렸다. 1710년 현재의 자리인 외남면 신상리 진등 마루에 새롭게 건물을 지어 서원을 복원하였다. 대원군의 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77년 사림의 중론에 의해 복원되었다. 옥성서원은 지역의 현안 문제를 협의하는 장소로 가장 많이 이용되었으며, 회합의 결과물인 결정 통문이 가장 많이 작성된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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