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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향교
Address:
경북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901
Description:
평해향교는 평해읍사무소 우측 뒤 언덕에 있다. 외삼문(外三門)을 지나 태화루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수려한 전망이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웅장한 백암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남으로는 새로 개통한 7번 국도가 지나고 남대천이 동해로 흐른다. 1357년(고려 공민왕 6)에 창건하고, 1407년(태종 7)에 옮겨 세웠다. 이후 1474년(성종 5)에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1612년(광해군 4)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 중건, 보수로 현재의 향교가 되었다. 급경사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대성전(大成殿)을 제일 높은 곳에 배치하고 내삼문, 명륜당, 태화루, 외삼문을 일직선축으로 배치한 전학후묘형(前學後廟形)이다. 태화루(太和樓) 아래는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는 13기의 조선 시대 선정비가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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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사정지(望槎亭址)
Address: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Description:
망사정지는 후포면 후포리 등기산에 위치했던 정자의 터다. 군지에 “망사정은 평해읍 남쪽 10리 밖인 등기산 관어대(觀魚臺)에 위치하며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창건하였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는다.”라고 전한다. 박원종은 연산군 때에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이곳을 왔는데, 고려 말 근재(謹齋) 안축(安軸)의 시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정자는 그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 망사정은 후포 등기산 자락에서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 후포등대가 있는 등기산 정상에 만든 망사정은 옛 위치가 아닐 것이다. 등대 아래쪽에 정자가 있을 법한 자리가 있다. 사(槎)라는 것은 ‘떼배’의 뜻으로 망사정이란 바다에 떠 있는 배를 보는 정자다. 정자에 홀로 앉아 일망무제로 보이는 푸른 동해와 외로이 떠 있는 배를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망사정에서 읊은 근재 안축의 시와 서거정과 성현(成俔)의 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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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재(永慕齋)
Address: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Description:
영모재는 후포면 후포3리 ‘다티고개’ 서남쪽 계곡인 ‘청구(靑邱)’에 위치하며 평해손씨 울진입향조인 평해군(平海君) 손익담(孫翼淡)과 22대손인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를 모신 재실로서 손씨 문중의 의례공간이다. 영모재는 후포리에서 구 7번 국도를 따라 평해 방면으로 2㎞쯤 가면 우측에 주유소와 휴게실이 있고, 그 맞은편 계곡에 위치한다. 초입에 손순효의 신도비가 있다. ‘청구’라고 불릴 만큼 사방이 솔숲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이 든다. 140여 년 전쯤 국도 7호선 맞은편의 산 경사지에 건립한 것을 해방 이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외삼문(外三門)과 영모재, 숭덕전(崇德殿)을 일직선상으로 배치하고, 주위에는 담장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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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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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산 31번지(산성동)
Description:
도통사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유교 사당으로 울진읍 고성리 산성동에 있다. 문공(文公) 주희(朱熹), 청계(淸溪) 주잠(朱潛), 문절(文節) 주열(朱悅) 등 삼현을 배향한다. 울진읍의 고산성 옛터 아래에 있다. 1924년 신안주씨(新安朱氏) 울진 문중에서 선조인 주자의 성덕을 기리고자 영당(影堂) 봉안 문제를 논의하였다. 1932년에 주자의 30세 후손인 주병렬(朱秉烈)이 중국에 가서 주자의 영정을 가져와 고성리 산성동에 있는 사저에 봉안하였다. 1935년에 고성리 산성동에 사당 1동과 강당을 건립하여 고성묘(古城廟)라 불렀고, 이후 도통사로 개칭하였다. 1936년 3월에 주자, 주잠, 주열의 삼현을 봉안하고 입묘제(入廟祭)를 거행하였으며, 이후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1994년 9월 옛 사우 건물을 철거하고 사우·삼문·담장을 신축하였으며, 강당을 중건하였다. 현재 매년 음력 3월 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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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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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Description:
독송정은 조선중기 효자이자 학자인 주세창(朱世昌)이 자신의 호인 ‘독송(獨松)’을 따 청고동(靑皐洞, 현 울진읍 고성리)에 지은 정자이다. 청고동은 울진읍 내에서 호월리 방향으로 500m쯤에 있다. 청고개가 나오고 월계서원으로 가는 다리 반대편에 고성리 학마을이 보인다. 주세창은 효성과 학행이 뛰어났다. 부친의 시묘살이 때 호랑이가 샘물 나는 곳을 가르쳐주었다는 ‘천감지효(天感之孝)’의 효자이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삼베 300필을 내리고 연일, 경원, 의주 교수(敎授)로 제수하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관동안무사(關東按撫使)로 울진현을 순찰하던 중 독송정(獨松亭)에 올라 지은 시가 전한다. 그 후 정자가 무너진 것을 현령 정필달(鄭弼達)이 1671년(현종 12)에 중건하여 석축을 하였으나, 오랜 세월로 퇴락하여 지금은 고성리(속칭 학마을) 신안주씨 본가로 옮겨 세웠다. 옛 독송정 자리에는 후손들이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주세창 선생의 효심을 빼어 닮은 노송 한 그루가 옛터에 남아 남대천을 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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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당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Description:
충효당은 울진읍 구만동 마을 중간쯤에 있는 신안주씨 종가에 있다. 뒷산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고산성이 있으며, 앞에는 잘 정리된 평지 논이 펼쳐져 있다. 제방 역할을 하는 도로 너머에 남대천이 흐르고 있다. 충효당은 충과 효에 뛰어났던 주경안(朱景顔)의 시호를 따서 지어진 강당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동쪽 산에 단(壇)을 쌓고 7년 동안 왜적이 물러날 것과 백성의 안녕을 위해 기도했다. 특히 효성이 지극하여 생시에 선조가 정려를 내리고 「삼강행실록」에 등재하였다. 이 건물은 1644년(인조 22)에 주경안을 봉안할 불천사(不遷祠)와 같이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중의 아동들을 가르치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거처로 사용하였다. 1907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7년에 중건하였다. 그 후 오랜 세월 퇴락한 것을 안타까이 여긴 문중의 발의로 1996년 불천사를 비롯하여 충효당 강당, 정려 효자각, 축천대를 다시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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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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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101
Description:
축천대는 울진읍 구만동 마을의 동쪽 산 정상부에 있다. 울진향교에서는 북서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구릉의 서편 산록이다. 충혼탑이 세워져 있는 월송대 공원 너머에 있다. 축천대는 임진왜란 때 주경안(朱景顔)이 단(壇)을 만들어 난이 끝나기를 기다려 기도했던 곳이다. 1965년 충효당 후손들이 힘을 모아 유허비를 세우고 주변은 정방형으로 돌담을 둘러놓았다. 1996년 7월 후손들이 다시 중건하였다. 주경안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함을 금치 못하였다. 나가 싸우고자 하였으나 고령이요, 군량미로 도우자니 집이 가난하였다. 대신 하늘에 기도하여 신의 도움으로 적을 물리치고자 하였다. 산 아래 돌을 직접 날라 석단 2층을 쌓고 매일 새벽에 목욕재계하고 향을 피우며 하늘에 7년간 기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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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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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708
Description:
울진읍 고성2리 가원동(佳原洞)에 있다. 울진장씨(蔚珍張氏)의 관시조인 매계(梅溪) 장말익(張末翼)과 그의 8세손인 판서 장양수(張良守)를 배향하고 있다. 1856년(철종 7)에 지역유림이 울진읍 호월1리(무월동)에 월계사(月溪祠)를 창건했다. 1862년(철종 13)에 예조에서 관문승원예(關文陞院例)에 따라 ‘월계(月溪)’라고 사액했다.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1924년과 1925년에 지역유림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우고, 세덕사(世德祠)라 칭했다. 3년 후에 경덕사(景德祠)로 개칭하였으나, 광복과 더불어 월계서원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 매년 10월 정일(丁日)에 향내 유림이 향사를 지낸다. 담장 안에는 사당인 경덕사, 월계강당, 국보각이 있다. 서원 좌측에 재실이 있고 우측에는 유적비군(群)이 있다. 월계서원에는 한국 최고(最古)의 공문서인 국보 181호인 ‘장양수홍패(張良守紅牒)’를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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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영당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명도리 464
Description:
아산영당(鵝山影堂)은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과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을 배향하는 사묘(祠廟)이다. 울진읍 명도2리 아산동(鵞山洞) ‘새터말’에 위치해 있다. 낙락장송이 병풍처럼 두른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새터골 높은 곳에 아산영당이 있다. 1888년(고종 25)에 산오(山五) 최국진(崔國鎭)이 자신의 집 옆에 초당을 짓고, 아들 최학영(崔學永)을 시켜 최치원의 모사본을 가지고 와 배향했다. 1925년부터에 최익현의 진영을 추배하여 처음 영당을 짓고 최치원의 영정과 계원필경 4권, 필첩 1권과 최익현의 초상을 함께 배향했다. 아산영당은 강당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다. 최익현의 「아산영당 영건기(營建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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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대(天然臺)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신림리 289-2
Description:
천연대는 1863년(숙종 9)에 울진현령으로 부임한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이 신림리에 있는 자연 암반을 ‘천연대’라 이름 짓고 시를 읊던 풍류의 공간이다. 천연대를 비롯해서 냉풍정·망월봉·설봉·덕은산·설매·구두산·조심봉을 ‘신림팔경(新林八景)’이라 부른다. 천연대는 울진읍 신림마을 앞을 흐르는 ‘새름천’의 왼편 언덕 기슭에 있으며, 암반 일부가 남아 있다. 제법 규모가 큰 자연 암반 위쪽에 2m 남짓한 원형의 석축을 쌓아 마련한 5평 남짓한 터가 천연대이다. 바위에 ‘天然臺(천연대)’라는 세 글자를 음각했다. 이 돌무지는 주민이 계곡 양편의 산이 청룡과 백호가 서로 다투는 형세라서 마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하여 이를 방지하기 위해 쌓은 것이라 전한다. 천연대 측면에 오도일의 유허비가 현존하며 전면에는 성황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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