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호정

    연호정   연호정   연호정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 797-6

    Description:

    연호정(蓮湖亭)은 울진읍 연지리의 ‘연호(連湖)’라 부르는 자연 호수의 북편 기슭 솔숲에 위치해 있다. 1815년(순조 15)에 죽루정자인 향원정(香遠亭)을 세웠는데, 오랜 세월로 퇴락하자 1922년 7월 군수 이기원을 비롯한 뜻있는 인사들이 힘을 모아 옛 동헌의 객사 건물을 옮겨 세우고 연호정이라고 현판을 걸었다. 오랜 세월 호수에 모래흙이 유입되면서 마름풀 등이 호수를 덮자 1990년에 울진군이 호수 주변을 정화하고 이어 연꽃을 복원하였으며, 2007년에는 야외 공연장과 산책로 등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군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연호정은 말 그대로 호수와 연꽃과 주변 경관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곳이다. 연잎이 호수 수면을 덮고 있어서 연꽃이 피기 시작하면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아진다.(香遠益淸)’라는 「애련설(愛蓮說)」의 문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 읍남리 유상욱 가옥

    읍남리 유상욱 가옥   읍남리 유상욱 가옥   읍남리 유상욱 가옥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216

    Description:

    유상욱 가옥은 읍남리 말루(抹褸) 마을에 있다. 이곳은 남대천 변에 있는 얕은 야산의 골 안으로 동해에 인접해 있다. “울진군 안에서 유 부자 땅을 밟지 않고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대부호였던 ‘말루 유부자집’으로 불린다. 이 집은 30대에 멸치·청어장사로 만석꾼을 일군 유재업(劉載業)이 강릉에 있는 목조기와집을 사들여 그 재목으로 집을 신축했다. 읍남리 유상욱 가옥은 명당으로 인근에 이름이 났다. 가옥구성은 남쪽의 진입로를 들어서면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이 마당 우측으로는 곳간, 좌측으로는 마구간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침은 바깥마당 북쪽에 자리한 ‘ㅁ’자형 겹집으로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4칸에 아담한 기와집이다. 평면구성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청 한편에 판벽을 쳐서 만든 작은 뒤주가 설치된 점과 대청을 앞쪽으로 반 칸 확장한 점이다.

  • 울진향교

    울진향교   울진향교   울진향교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653-1

    Description:

    울진향교는 울진읍 옥계동에 있다. 월송대 공원이 있는 월앙산 기슭에 남향으로 남대천을 마주하고 있다. 대성전은 1484년(성종 15)에 읍내리 월변동(月邊洞)에 창건되었는데, 1697년(숙종 23) 고성리(古城里) 성저동(城底洞)으로 이건했다. 그리고 1872년(고종 9)에 지금의 읍내리 옥계동으로 이전하였다. 울진향교는 한국전쟁 때 대성전과 동재(東齋)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됐다. 1980년 명륜당(明倫堂)을 중창하였는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에 따라 대성전·내삼문·명륜당을 배열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이고 지붕은 골기와로 맞배지붕을 이었다. 전면에 개방된 전퇴를 두고 내부는 통간으로 바닥에 전돌을 깔았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2007년 11월, 대성전의 기와 교체 작업 중, 상량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1622년과 1795년에 중수했다. 1864년에 이건한 후 중수하였고, 1872년에 다시 중수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봉림사(鳳林祠)

    봉림사(鳳林祠)   봉림사(鳳林祠)   봉림사(鳳林祠)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Description:

    봉림사(鳳林祠)는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모시는 사우이다. 울진읍에서 하당 방향으로 남대천을 따라 이어진 지방도 917호선을 따라 8㎞쯤 가면 정림 마을회관이 나온다. 그곳에서 오른편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천지봉의 지맥인 산두골로 500m쯤 가면 오른쪽 기슭에 봉림사가 자리하고 있다. 봉림사는 서남향인데 사우 바로 앞에 심은 원두충나무가 웃자라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삼문을 세우고 토담에 기와를 얹어 사우를 둘렀는데, 지금은 매우 퇴락했다. 1969년에 전우의 문인인 무실재(務實齋) 남진영(南軫永)이 경신계(炅愼契)가 창건하고 전우의 진상(眞像)을 봉안하여 ‘봉강영당(鳳岡影堂)’이라 칭했으며, 1978년에 봉림사로 개칭했다. 상복(喪服) 차림의 전우 진상은 당시 유교 복식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 경무사(景武祠)

    경무사(景武祠)   경무사(景武祠)   경무사(景武祠)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214

    Description:

    경무사(景武祠)는 남몽길(南夢吉)의 덕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남몽길은 진무원종공신록(振武原從功臣錄)에 일등공신으로 등재되고 병조참판(兵曹參判)으로 추증된 인물이다. 경무사는 울진읍 정림2리 박금마을에 있다. 울진읍에서 하당방향으로 남대천을 끼고 지방도 917호선을 따라 2㎞쯤 가면 용재교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1.5㎞를 가면 박금마을을 만난다. 경무사는 박금 마을회관에서 사계리로 넘어가는 ‘봇목재’의 우측 ‘뒷골’에 자리 잡고 있다. 1684년(숙종 10)에 창건하여 남몽길 선생의 신위를 모시고 금계사(琴溪祠)라 부르다가, 1851년(철종 2)에 중건하고 경무사로 개칭했다. 1877년(고종 14)에 다시 중건했다.

  • 거이재(居易齋)

    거이재(居易齋)   거이재(居易齋)   거이재(居易齋)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 신가동

    Description:

    거이재(居易齋)는 가암(柯菴) 전원식(田元植)이 강학(講學)하던 교육공간이었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어 유허비만 있다. 위치는 북면 사계1리 ‘사그막마을’의 동남쪽 ‘성가산(聖柯山)’ 뒷자락인 ‘신가동(新柯洞)’이다. 사계1리에서 명도리 방향으로 리도 215호선을 따라 200m쯤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거이재의 유허지와 유허비를 만날 수 있다. 거이재로 오르는 길은 협소하나, 유허지는 제법 널찍하며 성가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아늑하다. 초입에는 쇠치봉에서 발원한 ‘큰골거랑’이 명도리로 흐른다. 전원식이 초당을 짓고 ‘가동정사(柯洞精舍)’라 이름하였다. 나중에 뒤에 초가를 한 채 더 짓자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친필로 ‘거이재’라는 현판을 써주었다. 1993년에 가암학회에서 가암선생유허비를 세웠다.

  • 호월리 장보균 가옥

    호월리 장보균 가옥   호월리 장보균 가옥   호월리 장보균 가옥

    Address:

    경북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227

    Description:

    호월리 장보균 가옥은 울진장씨 직장공파(直長公派)의 종택으로 호월리 무월동에 있다. ‘무월들’과 남대천을 바라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류(背山臨流)의 마을이다. 마을은 ‘호수에 달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무월(舞月)’이라고 부른다. 이 가옥은 마을 동편 산록에 동남향한 정침과 그 옆으로 남동향한 월호당(月湖堂)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축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순치(順治) 14년 정유 5월’이란 기와 명문과 ‘1740년경 송재(松齋) 장만년(張萬年)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세워진 건축물’이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300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월호당은 장보균의 증조부가 글공부하던 곳으로 마루방 뒷벽에는 4대를 모신 감실이 설치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ㅁ’자형 살림집이다. 정침은 1940년경에 내부 일부를 고쳤다.

  • 성류굴

    성류굴   성류굴   성류굴

    Address:

    경북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30

    Description:

    성류굴(聖留窟)은 근남면 구산리의 성류봉 서쪽 기슭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영양군 수비에서 발원한 왕피천과 매화천이 합류하여 굴 앞을 지나 근남면 노음리에서 불영사계곡을 돌아온 광천을 만나 망양정이 있는 동해로 들어간다. ‘성불이 머물렀다.’하여 성류굴(聖留窟)이라 부른다. ‘선유굴(仙遊窟)’, ‘탱천굴’, ‘장천굴(掌天窟)’이란 이름으로도 불렀다. 성류굴은 기묘한 석회암들이 마치 금강산을 보는 듯하여 ‘지하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2억 5천만의 연륜이 쌓인 동굴로 추정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472m 정도 뚫어져 있다. 최대 광장은 폭 18m, 길이 25m, 높이 18m이며 수심은 대개 4~15m이고 온도는 15~17℃로 연중 거의 변화가 없다. 1963년에 천연기념물 155호로 지정하였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가 수도했으며, 이곡(李穀)의『관동유기』, 김시습의 시, 김창흡(金昌翕)의 기문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자연과 역사 문화의 보물이다.

  • 망양정

    망양정   망양정   망양정

    Address: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

    Description:

    망양정(望洋亭)은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번지에 위치하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이다. 고려 시대에 지금의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허물어졌다. 이후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신보(蔡申保)가 원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현종산(縣鍾山) 남쪽 기슭에 옮겨 놓았다. 또 1517년(중종 12)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자 다음 해에 안렴사 윤희인(尹希人)이 평해군수 김세우(金世瑀)와 협의하여 중수하였다. 그리고 1590년(선조 23)에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다시 중수하였으나 허물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자 1854년(철종 5)에 울진현령 신재원(申在元)이 망양정을 평해군에서 울진현으로 이축할 것을 향회(鄕會)에 발문해 둔산(屯山) 해안봉에 장소를 정하였으나, 재정이 부족하여 추진하지 못하였다. 1860년(철종 11) 윤3월 6일에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망양정이 오랫동안 무너진 것을 한탄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이름을 그대로 망양정이라 하였다. 그 후 정자가 퇴락되어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7년에 울진군과 울진교육청이 예산과 함께 목재를 기증받아 1958년에 중건하였다. 이후 다시 퇴락하자 울진군에서 여러 차례 보수하여 오다가 2005년에 완전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 격암선생(格菴先生) 생가지(生家址)

    격암선생(格菴先生) 생가지(生家址)   격암선생(格菴先生) 생가지(生家址)   격암선생(格菴先生) 생가지(生家址)

    Address:

    경북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누금마을 392번지

    Description: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의 생가지는 근남면 수곡리 누금마을에 있다. 현재 생가지 주변에 ‘격암 남사고 선생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생가터에는 안내판을 세워 생가지임을 알려준다. 유적지는 근남면 소재지에서 성류굴 방향으로 1.7㎞쯤에 있는 성류굴 주차장에서 오른편으로 난 군도 9호선을 따라 2.3㎞쯤 거리에 있다. 생가지 전면에는 왕피천 본류인 ‘수곡천’을 끼고 신봉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뒤편의 ‘누금들’을 건너 ‘매자리산’이 우뚝 솟아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이다. 영양남씨가 마을을 개척했다 전하며 현재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의 집성촌이다. 마을 주민은 생가지를 ‘서낭당터’라고 부른다. 생가지 뒤에 수려한 노송 두 그루가 있으며, 오른쪽 뒤편으로 격암의 위패를 모신 치격사(致格祠), 강당인 수남정사(水南精舍), 서재인 자동서재(紫洞書齋)가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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