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해대(臨海臺)

    임해대(臨海臺)   임해대(臨海臺)   임해대(臨海臺)

    Address:

    경북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Description:

    임해대는 창망한 동해와 백사장을 앞에 두고 수산들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독산(獨山)인 비래봉(飛來峰)에 있었다는 풍류의 공간이다. 비래봉은 울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산리 방향으로 구 7번 국도를 따라 500m쯤에 있는 토일교에서 남대천을 끼고 왼편으로 난 마을 길을 따라 500m 가면 ‘염전마을’ 오른편에 솟은 독산을 만난다. 산 밑자락에 절벽이 있는데, 이곳이 ‘해문독산(海門獨山)’으로 불리는 임해대이다. 1929년에 이병연(李秉延)이 편한 지리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누정편」에 임해대에 관한 기록이 있다. 옥소(玉所) 권섭(權燮)이 쓴 『유행록(遊行錄)』에 ‘비래봉은 폐허가 된 수산진에 있는데, <중략> 비래봉에 올라서 많은 배가 바다를 뒤덮은 광경을 보았다’라며 임해대에서 바라본 바다의 풍광을 노래했다.

  • 고산서원

    고산서원   고산서원   고산서원

    Address: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62

    Description:

    왕피천 하류의 수산교에서 영주 방향으로 난 36번 국도를 따라 3km쯤 가면 왼쪽에 ‘구미교’가 있다. 고산서원(孤山書院)은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전면에 있다. 근남면 행곡4리인 구미(龜尾)마을 초입에 있으며, 우측으로 주천대(酒泉臺)가 보인다. 서원의 왼편으로는 불영계곡을 돌아온 광천이 동해로 흘러든다. 행곡1리(샘실마을)와 냇물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고산서원은 주천대 부근에 살면서 후학을 가르친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와 울진현령으로 재임하면서 지역의 교육사업에 많은 공적을 남긴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오도일이 존경한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을 배향하는 의례 및 교육 공간이다. 고산서원은 오도일이 김시습의 절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주천대 옆에 동봉묘(東峯廟)란 사당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후일 고산서원이 태동한 계기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는 구암사(龜菴祠)라 칭했으며, 후에 왕이 사액(賜額)하면서 고산서원으로 개칭했다.

  • 격암선생 별묘(格菴先生 別廟)

    격암선생 별묘(格菴先生 別廟)   격암선생 별묘(格菴先生 別廟)   격암선생 별묘(格菴先生 別廟)

    Address: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구미동

    Description: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선생 별묘는 1837년(헌종 3)에 남사고의 직계 자손인 남명옥(南明玉)과 방계 자손인 남치붕(南致鵬)이 ‘북평(근남면 구산1리 뒷들마을)’에 세웠으며, 1965년에 방손인 우현(禹鉉)이 구미마을 율곡에 옮겨 세웠다.구미동(龜尾洞, 근남면 행곡4리)에 위치한다. 근남면 행곡1리 ‘샘실’마을 앞에 조성된 솔숲 앞에서 맞은편에 있는 구미교를 건너, 100m쯤 구미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중심에 있는 마을회관을 만난다. 마을 앞에 펼쳐진 ‘구미들’을 가로질러 마을의 서쪽 800여m에 이르면, ‘율곡(밤골)’의 입구에 자리 잡은 사당을 만날 수 있다. 사당 양편에 50여 년은 됨직한 배롱나무 두 그루가 호위하듯 서 있으며 전면에는 구미들이 펼쳐져 있다.

  • 주천대

    주천대   주천대   주천대

    Address: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산 72

    Description:

    주천대는 근남면 행곡4리 ‘구미(龜尾)마을’에 있다. 마을 초입 우측에 소고산(小孤山)이라 부르는 작은 산이 흘러내려 자연스레 대(坮)를 형성한 곳이다. 불영계곡을 지나온 광천(光川)이 휘돌고 36번 국도가 건너편에 지나간다.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 3그루가 있으며, 그 아래로 흰 모래톱과 맑은 물이 흐른다. 맞은편에는 작은 바위산과 죽림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루는 절경지다. 조선 인조 때 만휴(萬休) 임유후(任有後)가 주천대의 풍광에 반해 이곳에서 20여 년간 주거하고, 주천대를 중심으로 울진지역의 인사들과 깊은 교유를 한다. 만휴에 앞서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가 주천대의 경관을 사랑하여 자주 제자들을 거느리고 찾던 곳이다. 천문에 능했던 그가 속세에 대한 잡념을 모두 떨쳐버리고 우주의 오묘한 원리에 잠심(潛心)하여 연구하던 공간이었다. 주천대는 지역의 문풍을 북돋은 교육의 새 발흥지라 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은 만휴의 유적비와 동봉(東峯)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1645~1703), 만휴의 삼선생유허비(三先生遺虛碑)만이 주천대를 돌아 흐르는 내를 굽어보고 있다.

  • 삼조어비각

    삼조어비각   삼조어비각   삼조어비각

    Address:

    경북 울진군 원남면 금매리 산104

    Description:

    삼조어비각(三朝御批閣)은 원남면 매화리 몽천서원(蒙泉書院) 옆에 있다. 1794년(정조 18)에 창건되었다. 우암(憂菴) 윤시형(尹時衡),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삼선생(三先生)이 각각 올린 상소에 대해 효종(孝宗), 숙종(肅宗), 정조(正祖) 대왕이 내린 비답(批答)과 여러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이다. 삼조어비각은 고종(高宗) 5년, 서원 훼철령이 내려질 때도 비각만은 그대로 185년 동안 보존되어왔다. 그 후 오랜 비바람에 퇴락하자 여러 번 보수하였다. 그 후 건물의 훼손이 더욱 심해 종중문의(宗中問議)를 열어 어비각 중수 건축위원회를 발족하고 지금의 위치인 몽천소지(蒙泉沼池) 언덕 위에 1979년 4월에 준공하였다. 2001년에 다시 중수하고, 2005년에 주변을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충단

    경충단   경충단   경충단

    Address:

    경북 울진군 원남면 매화1리 죽포동

    Description:

    경충단은 원남면 매화리 죽포동 동편의 ‘강당골’ 입구에 있는 제단이다. 1456년(세조 2) 단종복위를 모의하다 순절한 최시창(崔始昌)과 최면(崔沔) 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32년 유림과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강릉최씨 사간공파 종택인 매죽당에서 동쪽으로 7번 국도 굴다리를 지난 곳에 위치해 있다. 산자락에 평지를 조성하여 중앙에 최시창, 우측에 최면의 단을 마련하고 비를 세웠다. 이조참판(吏曹參判) 민병승(閔丙承)이 글을 짓고 이종태(李鍾泰)가 비문을 썼다. 비의 삼 요소인 귀부, 비신, 이수의 형태를 완전히 갖추고 있다.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가혹한 처벌로 희생된 넋을 기리고자 세조대에 충청남도 공주의 계룡산 자락, 동학사(東鶴寺)의 동편에 초혼각(招魂閣)을 지었다. 1904년(광무 8)에 황제의 명으로 초혼각을 숙모전(肅慕殿)으로 개칭하였다. 이곳에 최시창과 최면 부자의 위패가 있다. 매년 음력 3월 14일에 제를 지낸다.

  • 매화리 윤광수 가옥

    매화리 윤광수 가옥   매화리 윤광수 가옥   매화리 윤광수 가옥

    Address:

    경북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642

    Description:

    매화리 윤광수 가옥은 강릉최씨의 집성촌인 최촌마을(현, 원남면 매화리) 초입에 있다. 남수산을 뒤로하여 매화들을 바라보며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750년(영조 26)경에 건립되었다고 하며, 1960년경 중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이며, 사랑채와 안채가 연이어져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전면의 중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부엌, 좌측에는 창고에 연접하여 사랑채를 구성하였다. 전면과 좌측에 반 칸 크기의 쪽마루를 부설하여 난간을 두르고, 지붕을 겹처마로 꾸며 사랑채로서의 격식을 갖추려 하였다. 상부구조는 사랑채와 안채 모두 삼량가로 대량 위에 동자주를 얹어 종도리를 받게 한 간략한 구성이다. 이 가옥은 몇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개조․변용되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쪽마루를 부설한 뜰집형으로 생활의 변화에 따른 한옥의 공간 변용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성동정사(聖東精舍)

    성동정사(聖東精舍)   성동정사(聖東精舍)   성동정사(聖東精舍)

    Address:

    경북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654

    Description:

    성동정사는 강릉최씨 각골파(사간공파의 분파) 파시조 종택에 있는 서재(書齋)로 강학활동의 장소이다. 3년 전에 해체했다. 원남면 매화리 윤촌마을에 있으며, 종택의 정침 우측에 자리 잡았다. 정사 뒤편에 가묘(家廟)가 있다. 정사는 남수산 지맥인 ‘성심산’ 끝자락에 있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정사의 주인인 관가당(觀稼堂) 최배용(崔配溶)이 「관가당기(觀稼堂記)」를 쓴 해가 1837년(헌종 3)인 것으로 미루어 이 무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명(堂名)은 종택의 뒷산인 ‘성심산’의 ‘성(聖)’자를 따서 명명했다고 전한다. 현 종손인 최부열(崔富烈)의 7대조인 관가당, 6대조인 매호당(梅湖堂), 5대조 애월당(愛月堂), 증조부인 외당(畏堂)선생의 편액이 전하며 선조의 문집을 모아 편 󰡔성동세고(聖東世稿)󰡕가 있다.

  • 대풍헌(待風軒)

    대풍헌(待風軒)   대풍헌(待風軒)   대풍헌(待風軒)

    Address:

    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1리 202번지

    Description:

    대풍헌은 기성면 구산리(邱山里) 어촌계 건물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조선조에 울릉도와 독도를 담당하기 위해 파견된 수토사(搜討使)가 머물며 ‘바람을 기다리던 곳’으로 삼척진영에 속한 객사(客舍)이다. 지금은 마을의 최고 의결기구인 ‘노반회’의 집회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지붕, 담장 등을 개축했다. 특히 독도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학계 관심을 끌고 있다. 대풍헌은 구산마을의 중심에 자리하며 마을의 주산인 ‘구산(龜山)’을 등지고 동해를 바라보는 남향의 ‘-’자형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구산동사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현판에 의하면 1851년(철종 2)에 중수하고 ‘대풍헌(待風軒)’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완문(玩文), 수토절목(搜討節目) 따위의 고문서가 현존한다.

  • 운암서원

    운암서원   운암서원   운암서원

    Address:

    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380

    Description:

    운암서원(雲巖書院)은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서원이다. 평해 월송정에서 기성 구산리 방향으로 1Km쯤에 있는 군무교의 뒤 언덕을 돌면 운암서원을 만난다. 오른편에 황보천을 끼고 있으며, 전면에는 울창한 해송림과 함께 그 너머로 푸른 동해가 펼쳐져 있다. 운암서원은 본래 1827년(순조 27) 지방 유림이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 백암(白巖) 김제(金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온정면 덕인2리 ‘반암동’에 창건했던 것이다. 그 후 1835년에 온정면 금천3리 ‘노니실’ 마을로 옮겨 세우고 ‘노은서원(老隱書院)’이라 칭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다. 1878년에 기성면 구산리 남쪽 산록에 상절묘인 수일당(隨日堂)을 건립하고, 1930년에 지금의 자리로 수일당을 옮겨 세운 뒤, 본 사당인 충절사를 건립하고 손순효와 김제, 그리고 백계(栢溪) 김희(金喜)선생을 함께 모셨다. 운암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5량가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중앙 2칸은 마루로 꾸미고 좌우에는 통간의 방을 두었다. .강당에는 ‘수일당(隨日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백암 김제 선생 치제단(致祭壇)’이라고 음각한 유허비를 모신 ‘해단(海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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