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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당(沙溪堂)
Address: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Description:
사계(沙溪) 이영발(李英發, 1603~1662)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서재이자 거주하던 생활공간이다. 기성면 사동리 사동산 자락에 있는 해월헌(海月軒: 해월 황여일의 별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 민가 가운데 위치한다. 주변에 민가 몇 채와 함께 왼쪽에는 밭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마을 도로와 인접해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강제(鋼製) 패널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중앙에 장마루를 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며,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마루를 설치하고 헌함을 둘렀다. 사계 이영발의 시가 적힌 편액이 전하며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사동마을은 ‘봉황포란형’의 해월헌이 소재한 마을로서 ‘영동 제일의 명당’으로 이름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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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헌
Address: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
Description:
해월헌(海月軒)은 동해가 인접한 기성면 사동리의 사동초등학교 동편 골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기 길주목사(吉州牧使)와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 되었던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이 지은 별당(別堂)이다. 1588년(선조 21)에 마악(馬岳) 아래 건립된 후 1847년(헌종 13)에 후손들이 현 종택 내로 이건하여 세웠다. 건물은 뒤편의 야산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안들을 향해 정침·해월헌·사당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1993년에 복원된 대문간 채를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침과 해월헌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그 뒤에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해월헌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이었으며, 전면에는 누마루처럼 꾸민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돌렸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문인으로 뛰어난 학자요 정치 외교가였던 해월, 그의 장자인 동명(東溟) 황중윤(黃中允), 외숙인 정담(鄭湛) 장군이 해월헌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명성에 걸맞게 당대 명사들의 수많은 시문과 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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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서원
Address:
경북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 816
Description:
명계서원(明溪書院)은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다. 기성 버스터미널의 남쪽에 있는 기성 다리를 건너 바로 우측 다천리 방향으로 500m가량 올라가면 정명천 건너편에 명계서원이 보인다. 1671년(현종 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대해(大海) 황응청(黃應淸)과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881년(고종 18)에 서원 유지(遺址)에 강학소를 세우고 향촌의 교육을 담당했다. 1982년에 지방 유림에서 서원과 대해·해월선생을 모시는 사당인 덕유사(德裕祠)를 복설하였다. 서원은 강당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에는 대해와 해월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인 상교당(尙敎堂)은 유림 회합 및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한다. 산을 등지고 경사면을 이용해 건축하였다. 남향으로 정명천을 끼고 넓은 들을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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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서원
Address:
경북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 692
Description:
노동서원(魯東書院)은 울진군 기성면 황보1리에 있다. 평해 월송정 입구에서 구산방향으로 가다가 군무교를 지나 곧바로 왼쪽으로 5㎞쯤 가면 황보1리 입구에 황보감리교회를 만난다. 노동서원은 여기에서 1시 방향에 있다. 노동서원은 1816년(순조 16)에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노동서원은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여 산을 등지고 넓은 들을 바라보며 남향으로 지어져 있다. 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수령 200년은 족히 넘을 모과나무 1그루가 있다. 창건 당시에는 강당, 사당, 동·서재, 전사청, 주사, 내삼문, 외삼문 등이 다 갖춰져 있었다고 하나, 새로 중건을 하면서 강당과 사당만 남아 있다. 지금은 오랜 세월동안 관리를 소홀하게 하여 매우 퇴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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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
Address: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891
Description:
추원재(追遠齋)는 만취당(晩翠堂) 김사원(金士元)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이다. 단촌면사무소가 있는 단촌면의 중심지인 하화리에서 동쪽으로 약 3km 정도 가다보면 도로 양편으로 낮은 언덕들이 드문드문 솟아있으며, 단촌면 관내에서 그나마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 관덕리가 나타난다. 단촌에서 점곡으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 관덕1리, 관덕2리, 관덕3리가 차례대로 나타나는데 추원재(追遠齋)는 관덕1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관덕1리 마을의 도로 왼편에 서 있는 ‘관덕동 3층석탑’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농로로 이어진 과수원을 지나 동북쪽 산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이동하면 농로 왼편의 산기슭에 허름한 건물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추원재이다. 추원재 앞으로 난 농로를 따라 산을 5분정도 걸어가면 관덕동 3층석탑이 나타난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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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정
Address:
의성군 단촌면 방하리 547
Description:
방학정(放鶴亭)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21대손인 김천손(金天遜)의 정자를 후손들이 1943년에 중건한 정자이다.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말에 의하면, 15세기 중엽에 신라 경순왕의 21대손인 의성김씨 김천손이 속세의 번잡함을 피해서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단촌에서 의성으로 가는 5번 국도를 타고 500m 정도 내려가다가 오른편에 방하리라고 쓰인 표지판을 따라 마을길을 따라간다. 얼마쯤이나 달려갔을까? 전통적인 산촌의 형태를 띄며 드문드문 나타나는 마을 서너 개 정도를 지나쳐 골짜기의 중심으로 들어왔다고 생각될 때 또 다른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 마을에는 마을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갈라지는 곳의 중심에 바로 방학정(放鶴亭)이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3칸 측면1칸 건물이고, 콘크리트 블록으로 담장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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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정
Address: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 327
Description:
방계정(芳溪亭)은 진성이씨 문중에서 방계(芳溪) 이세필(李世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7년경에 세운 정자이다. 정자가 있는 병방리는 단촌면에서 점곡면으로 들어오다 만나는 관덕3리에서 마을길로 약 500m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마을이다. 병방리는 마을이 남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작아져 마치 호리병모양을 하고 있는데, 방계정은 이러한 지형 가운데서도 병의 중간 격인 지형에 위치하였으니, 마을에도 그나마 평지가 있는 곳이다. 정자는 정면4칸, 측면1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면의 2칸은 당, 좌우로는 방이 있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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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천정
Address: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760-2
Description:
이 건물은 여말선초간의 격변하는 시기에 살았던 금산(錦山) 오국화(吳國華)의 정자이다. 세천정은 단촌면 세촌리의 북쪽 단애(丹厓)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자의 뒤편으로는 산이 앞으로는 미천(眉川)이 흐르고 있다. 후손들이 오국화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인데, 정면3칸, 측면1칸 반의 팔작지붕 건물로, 정자의 후면에는 고려징사금산오선생유허비(高麗徵士錦山吳先生遺墟碑)가 위치하고 있다. 관련유적으로는 의성읍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선생을 모신 우곡서원(愚谷書院)과 선생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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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서원
Address: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 351
Description:
화산서원(禾山書院)은 장흥부원군(長興府院君) 마천목(馬天牧)과 그의 장자 마승(馬勝)을 제사 지내는 서원이다. 서원은 단촌면 소재지에서 약 2km 떨어져 있는 하화(下禾) 1리에 있는데,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서원 앞에는 나지막한 산봉우리가 빙 둘러져 있어 단란한 마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숭도문(崇道門)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소훈당(昭勳堂)이 있고, 좌우측에 협실이 있다. 소훈당 뒤편으로 내삼문을 지나면 숭절사가 자리 잡고 있다. 숭절사 오른편에는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숭절사라는 이름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큰 키를 드높여 마천목과 마승의 절개를 나타내 주고 있다. 서원 전체를 감싸듯 사각형으로 담장이 빙 둘러 있다. 담장의 동쪽에는 화장실로 통하는 협문을 만들어 두었다. 서쪽의 협문은 예전에는 있었지만 복원하면서 담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서쪽 담 너머에 ‘소훈당중수기념비(昭勳堂重修記念碑)’와 ‘헌성비(獻誠碑)’가 있어, 화산서원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몇 걸음 더 걸어가면 재사인 ‘오천재(梧川齋)’를 신식 건물로 지어놓았다. 이 건물은 고전의 미가 물씬 풍기는 서원과 어우러져 과거에서 현재까지 시간의 연속 상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화산서원의 각 건물의 이름인 숭절사와 소훈당, 홍휴재(鴻休齋), 숭도문(崇道門)은 모두 효암(曉庵) 이중철(李中轍, 1848~1937)이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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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파정
Address: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 1003
Description:
이 건물은 조선후기 헌종년간 지은 금파(錦坡) 박종량(朴宗良)의 정자이다. 공의 행장을 살펴보면, 「공이 병오년(1846) 봄에 경시(京試)를 보고....아직 집에 돌아오기 전에 집이 우연찮게 화재로 전소되어 가산이 탕진되었으나 공이 “이것은 나의 운수에 기인한 것이다.”라고 하며 단애실(丹厓)에 수 칸의 집을 얽고 금파정이라고 하였다.」라고 한 대목이 보이는데 여기에서 금파정의 지어진 유래를 알 수 있다. 금파정은 점곡면의 동쪽에 위치한 동변2리의 마을 뒷산인 단산(丹山)의 남쪽 산록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의 뒤쪽으로는 단산(丹山)이 앞쪽으로는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는 이곳은 송고(松臯) 박윤성(朴允誠)의 9대손인 금파 박종량이 그의 아우인 종익(宗益), 종학(宗學)과 함께 1851년 경에 지었으며 주로 자질(子姪)들이 공부하고, 금파 자신이 소영(嘯詠)하던 곳이다. 정면3칸, 측면2칸 반의 팔작지붕 건물로, 건물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며 정자의 좌측에는 정면3칸, 측면 1칸의 영모재(永慕齋)가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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