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학서당

    백학서당   백학서당   백학서당

    Address:

    의성군 비안면 이두리 187

    Description:

    백학서당(白鶴書堂)은 1752년경 박수교(朴壽喬), 박도전(朴道傳), 김규석(金圭錫) 등 8개 문중이 후학을 길러내기 위해 외곡리 성곡(星谷)마을에 창건한 것이다. 그 후 1878년 비안면 이두마을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28번국도 옆으로 나 있는 아스팔트 옛길을 따라 계속 오다가 보면 이두2리가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계속가다 보면 골목길 하나가 나온다. 양쪽으로 집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사이로 백학서당이 보인다. 백학서당 안 주변에는 은행나무와 향나무 6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흙돌담위에 기와를 얹은 담 너머 마을과 함께 지난 세월의 자취를 말해주듯 서당은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 명곡서원

    명곡서원   명곡서원   명곡서원

    Address:

    의성군 가음면 양지리 286

    Description:

    명곡서원(明谷書院)은 1818년(순조 18년)에 유림들이 금은(琴隱) 박성양(朴成陽)을 추모하고자 지은 서원이다. 가음면 양지마을은 규모가 큰 양지 저수지를 지나 빙계 계곡으로 들어가는 마을[가음면 현리→춘산면 빙계리]로 진입하기 전에 위치해 있다. 명곡서원은 양지마을 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고풍스럽게 단장되어 있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들어온다. 명곡서원은 찾아 가기 쉬운 곳에 위치해 있고, 서원의 규모가 작지 않고, 품격을 갖춘 건물들이 시원스럽게 배치되어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마을에는 함양박씨 문중과 관련된 누정 및 당우(堂宇) 몇 채가 더 포진해 있다. 경제당(儆齊堂)과 경제선생[박채섭(朴埰燮)]행적비, 송암정(松庵亭) 등이 그것인데 문중의 단결력을 추측해 볼 수 있다.

  • 도해와 및 표절사

    도해와 및 표절사   도해와 및 표절사   도해와 및 표절사

    Address:

    의성군 가음면 순호리 220

    Description:

    도해와(蹈海窩)는 도해(蹈海) 구혜(具譓; 1606~1666)가 약 350년 전 효종조에 축조하였는데, 학문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공자(工字)형으로 지어졌다. 가음면소재지에서 3.5km 떨어진 순호 2리에 위치해 있다. 철제 대문과 석회석벽으로 도해와 전체 건물을 감싸고 있다. 철제문을 통해 들어가면 계단을 통해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솟을대문 양편은 행랑채이다. 행랑채 안에는 4칸 규모의 동재가 있다. 도해와 앞에는 순호 2리 노인정과 보건소가 있고, 도해와 뒤쪽 동북방향에는 구혜의 8대조인 고려말 충신인 송은(松隱) 구홍(具鴻)을 주벽으로, 병자호란 당시 충신이었던 구혜를 동편에서 서향을 향하도록 위패를 모신 표절사(表節祠)가 자리 잡고 있다. 도해와와 표절사의 앞 도로와 논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산인 선암산(船岩山) 황새등[鶴岡]에는 600년 전에 이 마을에 입향한 능성구씨 구익령(具益齡)을 추모하고, 그의 아들 구장손(具長孫)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학강재(學岡齋)가 자리하고 있다. 표절사와 도해와는 정남향이고, 학강재는 정북향이다.

  • 봉강재

    봉강재   봉강재   봉강재

    Address:

    의성군 가음면 가산2리 산11

    Description:

    봉강재(鳳岡齋)는 벽진이씨(碧珍 李氏) 문정공(文靖公) 이극송(李克松)과 이극송의 7세손인 화수헌(花樹軒) 이세남(李世南)을 모신 재사이다. 가산초등학교에서 가산 2리 경로당 직전에서 좌회전 하여 30m 지점에 봉강재가 있다. 봉강재의 전면에는 맞배지붕의 솟을대문이 있는데, 대문의 양쪽에는 행랑채가 한 칸씩 있다. 자연석으로 1m정도의 높이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중당협실의 구조이고, 동쪽 협실에는 이극송이 고려시대 고종에게 하사받은 ‘한옥정자추수정신(寒玉貞姿秋水精神)’이라 문구가 현판에 새겨져 있다. 봉강재는 구역 전체에 담을 두르지 않고, 뒤쪽에는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고, 서편에만 재사의 벽면의 길이만큼 석회석 담을 세웠다. 그래서 봉강재 마루에서 보면 동서로 마당이 훤하게 뚫려 있다. 봉강재 동편에는 1910년 외손인 신관조(申觀朝)가 지은 ‘화수헌 이선생 유허비(花樹軒李先生遺墟碑)’가 서있다. 비석은 나지막한 거북모양의 받침[귀부(龜趺)] 위에 서있고, 비석의 윗부분에는 무늬가 없는 이수(螭首)를 얹었다.

  • 학송재

    학송재   학송재   학송재

    Address:

    의성군 가음면 순호3리 832-5

    Description:

    학송재(鶴松齋)는 조선조 선조 때 순호 3리에 입향한 운포(耘浦) 신권(申權)의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학송이라는 순호 3리의 지세가 학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학송재 기문에서 백담(栢潭) 구봉령(具鳳齡; 1526~1586)이 신권(申權)에 대해 ‘하늘을 나는 학이요, 눈 내린 산봉우리의 소나무로다.[雲霄之鶴, 雪嶺之松]’라고 칭송한 데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학송재는 1943년 순호못이 신설되자 1947년 ‘새마’의 현재 자리로 이건한 것이다. 새마의 가장 서편에서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학송재로 가는 길에 감나무가 즐비하게 서있고, 건물은 마을길보다 1m가량 낮은 곳에 지어졌다. 동쪽에 나 있는 사주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고, 사주문 왼편에는 화장실을 새로 지어두었다. 재실은 4칸에 팔작지붕을 얹었으며, 석회석담으로 재실과 사주문을 에워싸고 있다.

  • 체련정

    체련정   체련정   체련정

    Address:

    의성군 가음면 가산2리 655-2

    Description:

    체련정(棣聯亭)은 달성서씨(達城徐氏) 서영희(徐永禧)와 서승희(徐承禧) 형제가 함께 지내기 위해 지었던 건물이다. 세월이 흘러 정자가 퇴락하자 후손들이 1974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체련정은 가산2리 동쪽 끝에 산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사주문과 정자는 모두 남향을 하고 있다. 50cm정도의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중당협실형으로, 정자의 정면에 퇴칸을 두었고, 오량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자는 기와를 얹은 토석담을 사방에 둘렀는데, 서남쪽 담은 허물어져 있다. 어칸에 ‘체련정(棣聯亭)’ 현판이 있고, 당안에는 박노선(朴魯善)이 지은 ‘체련정기(棣聯亭記)’가 걸려 있다. 정자의 오른쪽 담 너머에는 정자보다 1m가량 높은 대지에 서부일(徐富一)이 지은 달성서씨의성문유허비(達城徐氏義城門遺墟碑)가 서 있다. 정자와 밭을 사이에 두고 정면에는 오래된 정미소가 명물로 서있다.

  • 송암정 및 경재당

    송암정 및 경재당   송암정 및 경재당   송암정 및 경재당

    Address:

    의성군 가음면 양지리

    Description:

    송암정(松庵亭)은 1922년에 훈도였던 박경지(朴景智)를 위해 함양박씨 문중에서 세운 누정이다. 누정 동남쪽에 박성양(朴成陽)을 배향한 명곡서원이 있는데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경재당과 경재선생행적비(儆齋先生行蹟碑) 한 기가 서있다. 경재당은 박채섭(朴埰燮)이 오랫동안 강학하던 옛터에 1988년에 세운 양옥식 콘크리트 건물이다. 송암정은 경재당에 들어가기 전 골목길에서 우측으로 빠져야 이를 수 있다. 맞배지붕을 얹은 대문을 들어가면 소박한 모습의 대청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곳에 송암정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송암정은 최대한 장식을 배제하여 실용적이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또한 건물 뒤편의 낮은 산, 마을의 가옥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서 눈에 띄게 말끔한 모습의 고가(古家)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산수 사이에 위치한 누정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 옥천사 유허비 및 옹천재

    옥천사 유허비 및 옹천재   옥천사 유허비 및 옹천재   옥천사 유허비 및 옹천재

    Address:

    의성군 가음면 귀천2리

    Description:

    옹천재(甕泉齋)는 함양박씨 경와공파 문중의 재실로, 춘산면 금천2리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금천리는 마을 지형이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고, 군데군데 맑은 샘이 솟아 독처럼 생긴 우물이란 뜻에서 옹천(甕泉)이라 부른다. 권상규는「옹천단기」에 “광두산(廣斗山) 위, 금호(錦湖) 아래에 있는 마을에 옹천단소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옹천재는 후손인 박재구․박재환 등이 옹천단 위치에 신축한 재실이다. 건물은 석축 기단위에 ㄷ자 형의 입체적인 맞배기와집이다.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온돌방이 꾸며져 있어 재실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마루에 중수기․기문 등이 적힌 현판이 여러 개 걸려있으나 어찌된 탓인지 글자가 흐릿하여 읽어내기 어려운 편이다. 재실에서 조금 떨어진 산 언덕에 5~6기의 묘와 묘비가 서 있다. 묘는 언덕 위․아래로 넓게 퍼져 있는데 경와(敬窩) 박등(朴登)부터 우천(愚泉) 박장춘(朴長春)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가 모셔져 있다.

  • 성천재

    성천재   성천재   성천재

    Address:

    의성군 가음면 장1리 140

    Description:

    성천재(惺川齋)는 능성구씨(綾城具氏) 성천(惺川) 구건종(具建宗)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구건종이 옛날 은거했던 자리에 세운 재사(齋舍)이다. 가음시외버스정류장을 지나 덕천교를 건너면 덕천못이 보이고 못의 맞은편에 장1리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마을의 뒤쪽 언덕에 성천재가 위치하고 있다. 성천재의 사주문과 재사는 정동쪽을 향하고 있다. 맞배지붕을 얹은 사주문을 들어서면 건물의 서쪽 전면에 세워진 성천재중수기문과 성금명단을 새긴 비석을 볼 수 있다. 성천재는 50cm정도의 석회기단위에 세워졌는데, 기단 전면에는 1969년에 준공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김하용(金夏容)의 기문과 구현(具玹)의 중수기문을 통해 알아보면, 처음 재사가 세워진 것은 1931년이고, 1970년과 1993년 두 차례의 중수를 거친 뒤에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된 것이다. 성천재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두었고, 사방에 퇴칸을 두었다. 재사와 마당은 석회석 담이 에워싸고 있다.

  • 덕양서원

    덕양서원   덕양서원   덕양서원

    Address:

    의성군 춘산면 대사리 617

    Description:

    춘산면 대사리에 위치한 덕양서원(德陽書院)은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순절한 백촌 김문기(金文起)와 맏아들인 김현석(金玄錫)을 배향하는 곳이다. 서원은 의성의 동남쪽 끝에 위치해 있고, 청송․군위 등 다른 군과 접경 지역에 있어 여러 방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느긋한 마음으로 한참을 달리면 춘산면 면사무소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대사리가 나온다. 관봉봉(冠鳳峰) 기슭에 위치한 대사리는 두 마을로 갈라져 있고, 마을을 끼고 있는 지방도 좌우로 각 문중의 재실이 자리하고 있고, 곧 울창한 숲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숲에 들어앉아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덕양서원과 김녕김씨 충의공파 종택이다. 서원은 1천여 평의 대지에 층계식으로 건물이 포진되어 있어 계획적으로 잘 조성된 곳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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