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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오류헌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282
Description:
오류헌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자리하고 있다. 지촌 김방걸의 셋째 아들인 목와 김원중이 분가했을 당시인 숙종 4년(1678)에 건립한 가옥이다. 이 건물이 원래 있었던 곳은 지례리 천곡이다. 옛 집터는 서북쪽에서 뻗어 내린 산세를 의지하여 동남에서 서북간으로 흘러가는 반변천을 거슬러 바라보는 곳으로 가옥은 동남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90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오류헌은 전형적인 반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ㅁ자형의 주택이다. 안채는 건립할 당시의 건물로 추정되나 사랑채는 현 소유자인 김원택의 할아버지가 1920년에 크게 개축한 것이다. 이 가옥은 사랑마당, 안마당, 뒷마당 등 마당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 건물과 담장으로 명확하게 되어 있어 조선시대 주택의 내외 생활구역의 구분을 위한 공간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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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서원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226-1
Description:
사빈서원은 청계 김진과 그의 아들 5형제의 유덕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685년(숙종 11)에 사림과 자손들의 공동의견으로 세워졌다. 1709년(숙종 35) 동구밖 사수가로 옮기고 ‘사빈서원’이라 하였다가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1882년(고종 19) 사림과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설치되었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해 임하면 사의리에서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는 강당과 주사만 남아있다. 강당은 정면6칸, 측면2칸의 제법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건물 정면에는 ‘경덕사’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것은 사당의 현판을 강당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당은 많은 변형과 중수 등의 흔적이 있으나, 주사는 안동지방의 평면양식인 ㅁ자평면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고 변형이나 개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원형보존이 양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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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정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Description:
선유정은 청계 김진이 지어 셋째 아들 운암 김명일에게 내려준 정자이다. 김진의 본관은 의성으로 호는 청계이다. 부암서당과 임천서당 등을 열어 다섯 아들을 비롯한 문중 자제들과 근처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고장에 면학의 기풍을 일으켰다. 이 정자는 임하리에서 신덕리로 넘어가는 길목에 오미산 둔덕의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반변천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의 위치는 임하현 동쪽인 길안면 용계리 도연 선암 앞에 있었으나 해방 후 혼란기에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 규모는 6칸 겹집이었다. 지금의 선유정은 임하댐 건설시 1987년 현 위치에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좌측의 4칸은 마루로 꾸미고, 우측의 2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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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지촌증택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산 769
Description:
지촌종택이 있었던 지례마을은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례란 지명도 원래는 뛰어난 풍경에 아름다운 풀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었으나 후에 예절을 잘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시조는 조선 중기 때 대사헌을 지낸 지촌 김방걸이다. 이후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이 유서 깊은 마을은 안타깝게도 1978년 임하댐이 세워지면서 종택을 비롯한 지촌 선생의 유적들을 원위치에서 200m 올라간 마을 뒷산에 모아 새로운 마을을 조성하였는데, 바로 지금의 지례예술촌이다. 경내에는 지촌종택을 포함하여 지촌제청과 지산서당 등 3점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금은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촌종택은 □자형의 정침과 방앗간, 별묘, 곡간, 사당, 대문간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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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서당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 산 210-1
Description:
지산서당은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숙종 때 대사헌을 지낸 지촌 김방걸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800년(정조 24) 후손 및 지방사림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1926년 복원된 바 있으나 임하댐 건설로 말미암아 1987년 임동면 망천동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남서향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반의 전퇴칸을 둔 강당형 건물이다. 중앙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고 사면에 퇴마루를 두었다. 그리고 마루전면에 분합들문을 달아 마루방을 열고 닫게 만들고 방과 마루 사이에 분합들문을 두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일제시대에 복원된 건축물로서 수법이 매우 치밀하고 짜임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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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구곡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동 앞
Description:
안동시 임하면 내앞(천전)의 반변천 건너에 있는 백운정으로부터 상류를 거슬러 옛 망천동, 사의동, 박곡리, 악사리, 길안면 용계리의 도연과 선유정 일대에 이르는 반변천 양쪽 기슭을 임하 구곡이라고 한다. 그 일대에는 내앞 의성김씨 문중의 옛 유적이 널리 퍼져 있는데, 아래위 처음과 끝은 백운정과 선유정이며 모두 청계 김진의 유적이다. 지금은 백운정, 임천서원, 사빈서원, 송석재사, 선유정, 표은유허 등이 남아 있는데 원래 위치에서 옮겨진 유적이 많다. 또한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경관도 많은데 망천, 칠탄, 송석, 선창, 도연폭포 등이며 가뭄시 가끔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임하구곡은 정자, 서원, 재사, 여울, 폭포 등 인공물과 자연경관이 잘 어울려 있는 명승지이다. 구곡에 관련한 기사는 『영가지』와 『택리지』의 기록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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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서원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산 10
Description: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서원으로 이상정이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창건한 고산정사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고산서원은 1789년(정조 13)에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지방 선비들이 건립하였으며, 창건된 이후 선현 제사와 지방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상정은 이색의 15대손으로서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제자만도 273명이나 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그 이후에는 향사만 지내왔다. 1977년부터 다시 부속 건물들을 중수하고, 1985년부터 유림의 공의로 이상정의 아우인 이광정을 배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었다. 경내에는 경행사, 호인당 등 9동의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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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암정사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358/ 일직면 귀미리
Description:
귀암정사는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서 고운사 방향의 산 중턱에 있다. 경상북도기념물 제94호로 지정되었다. 오우당 김근의 덕행을 추모하고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김근은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여 장현광이 칭찬해 마지 않았던 유학자이다. 의성김씨 귀미파 일족이 양양, 진성, 안망을 거쳐 1615년(광해군 7)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김근의 6대손 김굉이 1791년에 재사를 지었다. 1793년에 별묘를 증축했고 1795년(정조 19) 가을에 완공했다. 당시에는 사당인 영모사, 동재인 치각, 서재인 양정, 강당인 강수 등 모두 20여 칸 규모였으나 현재는 사당인 영모사와 정사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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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암정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2-1
Description:
낙암정은 낙동강변의 자연 경관이 아름답게 보이는 낙연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1451년(문종 1)에 배환이 처음 건립하였으며, 1813년(순조 13)에 다시 지었다. 그 후 퇴락하여 1881년(고종 18)과 1955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낙동강을 향하여 서향으로 정좌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막돌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왼쪽 온돌방 쪽에는 각기둥을 세운 홑처마, 팔작지붕의 누각 형식 구조이다. 대청마루는 축대 위에서 1m 이상 허공을 두어 자연 통풍을 이용한 방습을 고려하였으며, 전면을 개방하고 대청을 뽑아내었다. 온돌방문은 전면에 걸이쇠를 두어 공간을 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낙암정은 조선조의 전형적인 정자 양식으로 그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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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씨 소호헌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1리 562
Description:
소호헌이란 당호는 고려시대 말기 마을에 살던 소시랑이라는 사람의 이름과, 마을 앞에 호수가 있어서 붙여진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집은 보물 제47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물을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시대 중종 때의 선비인 서해가 거처한 집이라고 한다. 본래 이명의 다섯째 아들로 청풍군수를 지낸 이고가 분가한 주택인데, 사위인 서해에게 물려줬다고 전해진다. 소호헌은 단층 목조로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별당 건축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지만 부속된 방은 맞배지붕으로 건물 전체의 평면은 T자형이다. 동쪽의 건물은 서해의 아들인 서성의 태실이다. 건물의 세부 양식에 나타난 오래된 수법은 조선시대의 민가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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