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수리 299

    Description:

    영모재는 영덕의 영양남씨(英陽南氏) 괴시파(槐市派) 선조를 모시는 재사이다. 이 재사에는 13세조 남정방(南靖邦)과 부인 수안김씨(遂安金氏), 15세조 남두원(南斗遠), 16세조 남붕한(南鵬翰) 등을 배향하고 있다. 재사는 창수면 수리 숯골마을을 지나 좌측 야산 밑을 돌아서는 길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一’자형 안채와 ‘ㄷ’자형의 문간채가 마주하여 전체적으로 튼‘口’자형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영양남씨 집안의 기록에 따르면, “1782년 8칸 기와집과 터를 매입하여 재사를 창건하였다. 남흥수(南興壽)가 1877년 재사를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안채는 어간(御間) 대청을 중심으로 홑처마 팔작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문간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 사암재(思庵齋)

    사암재(思庵齋)   사암재(思庵齋)   사암재(思庵齋)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471

    Description:

    사암재(思庵齋)는 재령이씨 경북 영해 입향조인 이애(李璦)와 그의 부인 진성백씨의 합장묘를 보호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기록에 의하면 1565년(명종 20)경에 건립되었으며, 1659년(효종 10)에 중수하였고 1702년(숙종 28)에 개수하였다. 그 뒤 부분적으로 다시 개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건축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사암재는 형제봉 줄기의 하나인 독재곡(篤材谷)의 깊은 골짜기 오른쪽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독재곡 골짜기의 왼쪽 등 중허리에 묘소가 있다. 건물 왼쪽에는 밭이 있고 주위에는 울창한 수목이 있다. 사암재는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의 튼 ‘ㅁ’자형 구조로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 건물이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중앙 어칸에 대문을 배치하고 협칸에는 온돌방을 배열하였다.

  • 청류정

    청류정   청류정   청류정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 400

    Description:

    청류정(聽流亭)은 이선도(李善道)의 분암이다. 진성이씨(眞城李氏) 9세손 이선도가 영해에 정착한 이후 영해에서 그 자손이 번창하였는데, 훗날 이선도의 자손들은 그를 기리기 위하여 신기리에 분암을 세웠다. 청류정은 ‘ㅡ’자형의 청류정과 ‘ㄷ’자형의 옥산재(玉山齋)로 구성되어 있는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의 집이다. 재사의 출입구는 정자 우측 뒤편에 설치된 사각문이다. 청류정은 신기2리 자연마을 중 주막거리 마을 끝자락에 주변 민가와는 떨어져 위치한다. 주변에는 논과 밭이 둘러져 있다. 이선도의 묘도비는 주막거리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 존재종택 및 명서암, 우헌정(存齋宗宅및冥棲庵.于軒亭)

    존재종택 및 명서암, 우헌정(存齋宗宅및冥棲庵.于軒亭)   존재종택 및 명서암, 우헌정(存齋宗宅및冥棲庵.于軒亭)   존재종택 및 명서암, 우헌정(存齋宗宅및冥棲庵.于軒亭)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32, 318-1

    Description:

    존재종택(存齋宗宅)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 1619~1672)이 세운 종택이다. 이휘일의 9세손이자 한말 의병장이었던 우헌(于軒) 이수악(李壽岳)이 태어난 곳이다. 종택은 정면 8칸, 측면 6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이다. 맞배지붕을 얹은 사랑채는 중문 우측에 자리 잡고 있는데, 기단을 다소 높게 축조하여 사랑채로서의 격조를 높였다. 사랑채는 2칸의 사랑방과 2칸의 사랑마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마루는 우측으로 돌출되어 좌측간의 고방과 함께 양날개집의 형상을 이루게 되었다. 명서암(冥棲庵)은 이휘일이 1661년 평소 거처하며 학문을 연마하기 위해 건축한 것인데, 이후 큰 물난리를 만나 황폐해졌다가 1774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각기와집이다. 우헌정(于軒亭)은 이휘일의 8대손인 이수악이 1800년대에 건립한 정자이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붕 기와집이다.

  • 오촌리갈암고택(梧村里葛庵古宅)

    오촌리갈암고택(梧村里葛庵古宅)   오촌리갈암고택(梧村里葛庵古宅)   오촌리갈암고택(梧村里葛庵古宅)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29

    Description:

    갈암고택(葛庵古宅)은 조선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고택이다. 이현일은 둘째형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과 함께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오촌리 마을을 개척하고 이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갈암고택은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ㅁ’자형 주택인데, 평면은 중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마구를 두고 우측에 사랑공간을 구성하였다. 사랑채는 2통간 사랑방과 사랑마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마루는 뒤로 1칸을 더 연결하여 2통간을 이루게 되었다. 안채는 3칸 규모의 안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뒤주, 안방, 부엌을 연접시켜 좌익사를 이루었고, 우측에는 건넌방, 통래마루간, 고방을 연접하여 우익사를 이루고 있다.

  • 영덕 오촌리냉천고택(盈德 梧村里冷泉古宅)

    영덕 오촌리냉천고택(盈德 梧村里冷泉古宅)   영덕 오촌리냉천고택(盈德 梧村里冷泉古宅)   영덕 오촌리냉천고택(盈德 梧村里冷泉古宅)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37

    Description:

    냉천고택(冷泉古宅)은 조선후기 유학자 냉천(冷泉) 이유원(李猷遠)이 지은 고택이라고 한다. 건축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후기로 추측하고 있다. 이 건물은 오촌1리 도로변 면운재고택 바로 옆에 있으며, 근방에는 갈암고택과 존재종택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명서암이 자리하고 있다. 뒤에는 등운산 지맥이 뻗어 야트막한 산을 이루고 있으며, 앞에는 들이 펼쳐져 있고 오서천이 흐르며 운서산이 솟아있다. 건물의 구조는 ‘ㅡ’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안채, 그리고 ‘ㅡ’자형의 아래채가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 면운재고택(眠雲齋古宅)

    면운재고택(眠雲齋古宅)   면운재고택(眠雲齋古宅)   면운재고택(眠雲齋古宅)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39

    Description:

    면운재고택(眠雲齋古宅)은 조선후기 유학자 면운재(眠雲齋) 이주원(李周遠)의 고택으로, 기록에 의하면 이주원이 36세 때인 1750년에 건립한 것이다. 일제시대에 그의 7대손인 이겸호(李謙浩)가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사용하기도 한 곳이다. 면운재고택은 창수면 오촌1리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근처에는 존재종택(存齋宗宅), 갈암고택(葛庵古宅) 그리고 명서암(冥棲庵)이 있으며, 마을 앞에는 운서산(雲棲山)이 솟아있다. 면운재고택은 원래 정면에 대문채가 있었으나 6․25동란 때 훼손되어 철거되었고, 현재 정침만 남아 있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5칸 반 규모의 ‘ㅁ’자형 건물인데 사랑공간을 중문칸의 우측에 마련하였다. 삼량가(三樑架)의 홑처마집이다.

  • 영덕 충효당(盈德 忠孝堂)

    영덕 충효당(盈德 忠孝堂)   영덕 충효당(盈德 忠孝堂)   영덕 충효당(盈德 忠孝堂)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465

    Description:

    영덕 충효당(忠孝堂)은 재령이씨 영해 입향조인 이애(李璦)가 건립한 종당(宗堂)이다. 1576년(선조 9)에 이함(李涵)이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뒤쪽인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충효당의 뒤에는 등운산의 긴 줄기가 마치 새의 날개처럼 펼쳐져 둘러싸고 있으며, 앞은 탁 트인 들판의 한가운데로 송천이 유유히 흘러가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충효당과 종택은 나란히 남쪽을 향하여 자리 잡고 있으며, 두 건물 사이의 뒤쪽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충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안채는 정면 7칸 반, 측면 6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이다. 충효당은 주로 후학들의 교육 장소로 사용되었다.

  • 영덕 만괴헌

    영덕 만괴헌   영덕 만괴헌   영덕 만괴헌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493

    Description:

    만괴헌(晩槐軒)은 신재수(申在洙)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인 가옥이다. 신재수는 영해향교 태화루(太和樓)를 개수하여 교육을 장려했을 뿐 아니라 흉년에 백성들에게 많은 시혜를 베풀었다 하여, 조정에서 가의부위(嘉義副尉)라는 벼슬을 하사받은 인물이다. 만괴헌은 인량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건축 당시 정침 9칸, 외당 3칸, 사당 1칸의 규모였으나, 1843년(현종9) 신재수가 와가 17칸, 초가 5칸의 규모로 개조하고, 그의 손자 신의영(申義泳)이 현재 규모로 확장 개축하였다. 인량리 마을의 경사를 이용하여 지어진 만괴헌은 사랑채에서 영해벌판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저택의 마당과 안채를 출입하는 대문 앞에는 낮은 담을 쌓아 집을 방문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구조하였다. 만괴헌 뒤쪽으로 신돌석대장의 의병부대가 활약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고래산이 안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지족당

    지족당   지족당   지족당

    Address: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5길 49-12 (인량리)

    Description:

    지족당은 정조 때 장수현감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권만두(權萬斗, 1674~1753)가 1727년에 지은 살림집이다. 지족당은 사랑채, 대문채, 좌우행랑채, 안채(대청)로 구성된 ‘ㅁ’자형 목조기와집에 양 날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ㅁ’자형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족당은 8개 성씨의 종실(宗室)이 거주하는 인량리 마을 뒤편 산자락 아래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으로 만괴헌과 충효당이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건물의 외관을 수리하였다. 현판, 교지, 장수공문집 등은 원손 태훈이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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