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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헌
Address: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산17
Description: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충렬지사인 박의장(朴毅長)의 아들 박륵(朴玏)이 건립한 정자이다. 「금서헌기(琴書軒記)」에 “(박늑이) 서당을 지었는데 가운데는 대청을 두고 양편으로 협실을 꾸몄다. 동쪽 방에는 거문고를 두어 천하의 맑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였고, 서쪽 방은 수천 권의 책을 마련하여 옛 성현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건물은 장서고 기능을 갖춘 교육공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금서헌은 중구봉의 산자락에 동향으로 지어져 정자 앞에 펼쳐진 송천강과 강 주위에 넓게 펼쳐진 인량, 벌영, 성내들을 한눈에 보이고 멀리는 상대산과 동해가 보이는 곳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정자 전면에 사주문이 자리 잡고 있고 정자 주위는 토석 담장으로 둘러 있다. 금서헌 기문은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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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암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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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271-1
Description:
시암고택은 영해면 원구마을에서 창수면소재지로 향하는 지방 918번 국도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연지(蓮池)에 모래흙을 메우고 터를 잡은 집이라고 한다. 이 고택은 남진만(南震萬, 1697~1773)이 건립한 살림집인데, 그의 5대손 남교성(南敎成)이 친족인 시암(時庵) 남고(南皐, 1807~1879)에게 매도하였다. 현 소유주의 고조부인 남고는 영양남씨 영해 입향조인 남수(南須)의 14대손이자 남경훈(南慶薰)의 8대손인 남유로(南有魯, 1770~1814)의 차남이다. 남고는 결혼 후 분가하면서 이 집을 구해 크게 중수하였다. 시암고택은 정면 5, 측면 5칸 규모의 ‘□’자형 형태다. 우측에 정면이 다소 넓은 단칸 규모의 사당을 마련하여어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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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난고정(盈德 蘭皐亭)
Address: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194-2
Description:
난고정은 임진왜란 때 영해지역의 의병장이었던 난고(蘭臯) 남경훈(南慶薰, 1572~1612)이 만년에 지은 정자이다. 1606년(선조 39) 경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그 후 1684년에 중건하였으나 옛 땅이 여염집과 가깝고 지세가 좁아 남쪽으로 몇 리쯤 되는 삼광동(현 영해면 묘곡동)에 이건하였다가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을 계기로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였다. 정자는 영해면에서 창수면소재지로 향하는 원구마을의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9호 영해 난고종가 정침의 대지 안에 가묘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난고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한 2층 누각형 건물로, 주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집 형식이다. 경북 북부지역에서 자주 보이는 평면유형이지만 이제는 찾기 힘든 서민 주거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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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난고종가 정침(寧海 蘭皐宗家 正寢)
Address: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194-2
Description:
난고종가는 조선 중기 성균진사(成均進士)이자 임진왜란 때 영해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난고(蘭臯) 남경훈(南慶薰)의 종가이다. 그 아들인 안분당(安分堂) 남길(南佶)이 1624년(인조 2)에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가는 모두 7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대문채에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의 ‘口’자형 정침과 대청인 만취헌(晩翠軒)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그 우측으로는 담장을 두른 사당과 별묘(別廟), 그리고 난고정(蘭皐亭) 및 주사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집안 대대로 전해온 난고종가문서(蘭皐宗家文書)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8호로 지정되어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 보관되고 있다. 이처럼 난고종가는 건립 당시의 생활상과 건축에 대한 의식이 잘 보존 전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가의 시대 변천 과정을 400여 년간 기록해온 문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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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당종택(慶壽堂宗宅)
Address: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112-1
Description:
경수당종택(慶壽堂宗宅)은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 2등의 공훈을 받은 경수당(慶壽堂) 박세순(朴世淳, 1539~1621)이 건립한 가옥이다. 이 집은 선조 3년(1570)에 처음 건립되었는데, 현종 9년(1668)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후손 박문약(朴文約)이 1713년(숙종 39)에 현재 규모로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수당종택은 영해면 원구마을 안쪽 평지에 북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종택 안에는 정침과 그 우측에 대청이 자리 잡고 있으며, 대청 후원에는 조그만 연못과 경수당 향나무(경북도지정 기념물 제124호)가 보존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6칸 규모의 ‘ㅁ’자형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대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상부에는 경수당(慶壽堂)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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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원(九峰書院)
Address: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576-1
Description:
구봉서원은 박의장(朴毅長)과 박홍장(朴弘長) 형제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1666년(현종 7)에 건립한 것이다. 구봉서원의 좌우 양 옆으로는 각각 아홉 개의 산봉우리〔重九峰〕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앞쪽으로는 원구평야 너머로 멀리 동해안이 바라다 보인다. 그래서 구봉서원의 대청 한가운데 ‘동해안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는 의미의 ‘망일루(望日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 현판은 현재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구봉서원의 대문을 들어서면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 오른쪽에 2칸의 온돌방이 붙어 있다. 대청에는 4짝의 분합(分閤)을 설치하여 마루방을 연결했으며, 앞쪽으로 1칸 규모의 마루를 내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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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당(尙義堂)
Address:
경북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128-2
Description:
상의당은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백충언(白忠彦)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지은 사당이다. 조선 숙종 때 영해부 원구리에 건립하였으며, 헌종 때 문중 진사 함양재(涵養齋) 백기동(白基東)이 별당으로 사용하다가 후손 백중건(白重健), 백중규(白重圭) 등이 다시 매입하여 관리하였다. 1869년에 중수하였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 반 규모이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특히 평면 구성이 ‘ㄱ’자형을 이루고 있어 이채롭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전면에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둔 온돌방을 두었으며 우측으로는 고방과 마루방을 돌출시켰다. 중수 당시 궁궐 목수가 건축하였다고 하는데, 문틀의 맞춤이나 목재 마름질 수법들에 많은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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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재사(水洞齋舍)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대곡리 479
Description:
수동재사는 대흥백씨(大興白氏) 집안의 선영을 수호하는 재사이다. 임진왜란 때 국난 극복에 기여했던 상의당(尙義堂) 백충언(白忠彦, 1538~1609)과 그 부인, 그리고 그의 아들 백몽룡(白夢龍)·백몽표(白夢彪) 부부 등 그 후손들의 묘를 지키고 있다. 수동재사는 숙종 때 백훤(白暄)·백돈(白暾) 형제가 처음 건축했으며, 그 후 1836년에 중건되었다. 백충언은 임진왜란 당시 어가(御駕)를 호위하는 등의 공로로 용양위좌부장(龍驤衛左部將)에 올랐으며, 선무원종(宣武原從) 2등 공신으로 그 공훈이 기록되었다. 재사의 전체 배치는 전면에 7칸 규모의 대문채가 있고, 마당을 지나 수동재사가 자리하고 있다. 재사는 가운데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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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렴정(景濂亭)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1리 154-2
Description:
경렴정은 연정(蓮亭)이라고도 불린다. 1638년 박선(朴璿, 1596~1669)이 영해면 원구리에 초가삼간의 이오당(二五堂)을 짓고 여러 수목과 화초를 심었는데, 그 후 1655년 축산면 도곡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이오당을 이건하고, 1661년 도와정 자리에 조그마한 집을 새로 건립하였는데, 이곳을 경렴정이라고 이름지었다. 박선은 경렴정 부근에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자신의 호를 도와(陶窩)라고 고친 다음 심신을 수양하는 데에 진력하였다. 그 후 몇 번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자는 축산면 소재지 무안박씨 무의공파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74호)과 도곡동 충효당(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3호) 사이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이고, 소로로 상부를 수장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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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도곡동 충효당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137
Description:
도곡동 충효당은 박의장(朴毅長)의 넷째 아들인 박선(朴璿)이 1620년경에 세운 가옥이다. 건축 당시 ‘ㅁ’자형 99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나, 두 차례의 화재로 본래의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690년대에 건립한 정침(正寢)을 비롯하여 1700년대에 건립한 주택 33칸, 가묘(家廟) 6칸, 경렴정, 일성재 등을 포함한 42칸이다. 도곡동 충효당은 축산천(丑山川)을 따라 형성된 ‘내들’ 안쪽 북쪽 야산을 배경으로 하여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변 민가들과는 떨어진 거리에 홀로 자리하고 있다. 도곡동 충효당에 가기 위해서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농업도로 100m 가량을 걸어가야 한다. 99칸 중 절반 이상을 화재로 소실되고 42칸만 현존하지만, 외견상으로는 여전히 규모가 크다. 남아있는 정침 우측으로는 별도로 바깥사랑이 위치하며, 내부 벽면에는 조선시대 천하의 귀필(鬼筆)로 알려진 박춘수(朴春秀)의 무이구곡시(武夷九曲詩)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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