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돌석장군 생가지(申乭石將軍 生家址)

    신돌석장군 생가지(申乭石將軍 生家址)   신돌석장군 생가지(申乭石將軍 生家址)   신돌석장군 생가지(申乭石將軍 生家址)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528-1

    Description:

    신돌석(申乭石, 1878∼1908) 장군 생가는 축산면 도곡리 복두미 마을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에는 신돌석장군 유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집은 신돌석의 부친 신석주(申錫柱)가 1850년경에 초가집으로 지은 가옥이었다. 그러나 1940년경에 일제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꺾기 위한 전략으로 생가에 불을 질러 일부가 소실되었다. 1942년에 보수하였고 해방 후 1995년에 정비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돌석 의병장은 1878년(고종 15)에 태어났으며 본명은 태호(泰浩)였다. 어릴 때 서당에서 공부할 무렵부터 행동이 날래고 담력이 있어 항상 대장 노릇을 하였다. 장군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전국에서 기의할 때부터 영해지역의 의병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을사조약이 강제적으로 맺어진 후인 1906년에 고향에서 창의하여 의병장이 되어 영덕, 영양, 울진 등의 여러 곳에서 일제 군경을 섬멸하는 전공을 세웠다.

  •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127

    Description: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은 박의장(朴毅長, 1555~1615)의 넷째 아들인 박선(朴璿, 1596~1669)이 큰형 박유(朴諭)를 위하여 1644년경에 건축한 건물이다. 축산면사무소가 위치한 도곡리 마을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건물 구성은 6칸 규모의 대문채와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 우측 전면에는 사랑채가 있으며, 그 후면에는 박의장의 불천위(不遷位) 사당이 건축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우물마루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2통간의 안방과 부엌을 두었고 우측에는 상방을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초익공계 형식을 갖추고 있다.

  • 흥교당(興敎堂)

    흥교당(興敎堂)   흥교당(興敎堂)   흥교당(興敎堂)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154-2

    Description:

    흥교당은 도와(陶窩) 박선(朴璿)과 대은(臺隱) 권경(權璟)을 배향하던 도계정사(陶溪精祠)가 없어지면서 그 위패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흥교당은 축산면 도곡리의 야산을 올라가다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사당의 둘레에는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옆쪽 담장 사이에는 네 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문을 설치하였다.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한 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대청과 좌우의 온돌방 앞쪽으로 반 칸 정도의 마루를 내었다. 대청의 전면에는 4짝의 분합(分閤)을 설치하여 마루방을 이루었다. 사당의 전체 규모는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 육이당

    육이당   육이당   육이당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193-5

    Description:

    육이당은 이화영(李和榮)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손자인 이병국(李炳國)이 1891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육이당은 ‘ㅁ’자형 주택으로, 과거에는 정침 뒷쪽에 육이당(六怡堂)이라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북쪽을 흐르는 축산천을 따라 상원리에서 칠성리로 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고, 건물은 도로변에 정면 4칸, 측면 5칸 규모로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육이당에는 2~3년 전까지 사람이 거주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다. 건물의 앞쪽은 맞은편 민가의 밭과 경계를 이루는 토담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 일부는 허물어져 있다. 상원리 방면 도로변 우측으로 높이 1m가량의 시멘트 담을 둘러 육이당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육이당의 뒤쪽으로 영모당이라 불리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효우재 현판이 건물의 내부에 있다.

  • 이전재(泥田齋)

    이전재(泥田齋)   이전재(泥田齋)   이전재(泥田齋)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칠성2리 525

    Description:

    이전재(泥田齋)는 1886년 남길(南佶)이 지은 재사로, 남의록(南義祿)과 남경훈(南慶薰)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이전재 영역에는 5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한 제수청이 앞에 있고 제수청 뒤편에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지붕의 재실인 이전재가 자리 잡고 있다. 마당 우측에 우진각 지붕을 한 2칸 규모의 관리사가 있다. 이전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형태의 건물이다. 평면의 구성은 가운데 3칸을 앞쪽 칸에 마루를 깔고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좌우 온돌방은 ‘ㄱ’자 형태로 좌우를 같게 꾸며 독특한 평면형태가 되었다. 온돌방과 대청 전면에 난간을 둘러 정자와 같은 느낌이 들게 하였다.

  • 이매당

    이매당   이매당   이매당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161

    Description:

    이 정자는 영덕 축산면 칠성리 영양남씨 입향조 남신명(南愼明)이 1829년 건립한 정자이다. 칠성리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뛰어나고 마을 앞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류형의 산촌이다. 이매당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남신명이 “스스로 매화에 의탁하여 동거하는 매화 한 그루가 되었다”고 하여 ‘두 그루 매화의 집[二梅堂]’이라고 당호를 짓고, 또한 자신의 호도 이매당이라 불렀다. 건물은 전면 3칸 규모의 대문채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기둥은 전면 에만 원주를 사용하였다. 일부 보수를 하였으나 보존이 잘 된 편이다. 담장은 돌담에 기와를 입혀 정자와 조화를 이루고 있고 마을 앞 하천을 향해 남서향으로 지어졌다.

  • 목사공종택

    목사공종택   목사공종택   목사공종택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169

    Description:

    목사공종택은 목사(牧使) 벼슬을 지낸 농아당(聾啞堂) 박홍장(朴弘長)이 칠성리에 이사와서 지은 종택이다. 칠성리 자연마을 중 가장 안쪽의 ‘진밭’ 중앙에 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목사공종택 입구로 낮은 토담이 둘러져 있으며, 토담 안쪽으로 좌측 목사공종택과 우측 단층 양옥집이 위치한다. 현재 남아 있는 좌측 건물은 안채이며, 우측 양옥집에는 사랑채가 위치하였으나 퇴락된 후 관리인이 거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양옥집을 새로 지었다. 목사공종택은 정면 3칸 반,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막돌 쌓기 한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각주를 세운 후 5량가의 가구를 결구했다. 와가까치구멍집으로서 마루가 수용된 온돌중심형 겹집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북부지방의 온돌중심 주거문화와 남부의 마루중심 생활양식이 절충된 형태이다.

  • 화재 및 육영루

    화재 및 육영루   화재 및 육영루   화재 및 육영루

    Address:

    경북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606

    Description:

    화재(花齋)와 육영루(毓英樓)는 영양남씨(英陽南氏) 후손들이 남수(南須)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건물이다. 화재는 남수의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며, 육영루는 후학을 가르치기 위한 강당이다. 화재와 육영루는 칠성리 자연마을 꽃밭 입구에서 우측으로 난 언덕길을 따라 약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뒤쪽 산을 배경으로 육영루가 있고 그 우측에 화재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육영루 좌측 언덕에는 남수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전면에서 좀 떨어진 도로변 주변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주변으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남수의 묘역 주변으로는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행적비와 묘역정화비가 세워져 있다. 육영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소로 수장, 홑처마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화재는 경사진 대지 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로 세워져 있다.

  • 영덕 수정재(盈德 水晶齋)

    영덕 수정재(盈德 水晶齋)   영덕 수정재(盈德 水晶齋)   영덕 수정재(盈德 水晶齋)

    Address:

    경북 영덕군 영덕읍 구미리 250

    Description:

    수정재는 평산신씨의 선조 신희(申禧), 신종부(申從溥), 신규년(申虯年)을 배향하는 재사로, ‘수정서사(水晶書祠)’라 부르기도 한다. 1702년 원래는 세덕사(世德祠)를 건립하였으나 1864년(고종 1)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따라 없애고, 입향조 묘소 아래 재사로 전용하면서 선조 3명을 배향하게 되었다. 이후 몇 차례 중수했다고 한다. 수정재는 영덕읍 구미리에 소재한 영덕농촌기술센터 좌측 뒤쪽 편에 위치하고 있다. 재사의 구조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서사를 중심으로 튼‘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실질적으로 재사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서사는 6칸 규모의 넓은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측 각 2칸 온돌방을 둔 구조이다. 건물들은 각기 주성재(主誠齋), 사경재(思敬齋)로 이름지어졌고, 동·서재의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 삼어정

    삼어정   삼어정   삼어정

    Address:

    경북 영덕군 영덕읍 삼계리 218-2

    Description:

    삼어정은 동계(東溪) 류진성(柳晉成)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원래 이 정자의 터는 류진성이 서당을 짓고 후학양성을 하던 곳으로 현재 정자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으로 산 아래에 위치하였고 서당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이후 1917년에 현재의 위치에 이건하였다. 삼어정이 있는 삼계리((三溪里)는 삼가현감(三嘉縣監)을 역임한 류유(柳囿)가 입향한 이후 그 후손들이 현재까지 세거하는 곳으로 문화류씨(文化柳氏) 집성촌이다. 삼어정에 서면 마을전체가 한 눈에 조망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를 사용하였고 사방에 낮은 산들로 에워싸인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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