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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향교(盈德鄕校)
Address:
경북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 160
Description:
영덕향교는 조선시대 영덕 지역의 인재를 교육시키기 위해 국가에서 설립한 관립학교이다. 영덕향교는 현재 영덕읍 화개리 양옥이 밀집해 있는 마을 안에 위치해 있는데다, 건물도 2007년 유교문화권사업의 일환으로 새롭게 지은 것이어서, 고풍스러운 멋은 별로 없다. 원래의 영덕향교는 6․25전쟁으로 전소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장소에 새롭게 옮겨 짓게 된 것이다. 영덕향교라는 현판이 걸린 정문인 삼문을 들어서면 여느 향교처럼 정면에 명륜당(明倫堂)이 보이고, 좌우에는 각각 서재(西齋)와 동재(東齋)가 있다. 명륜당을 지나면 대성전(大成殿)이 나타난다. 대성전의 전면은 중앙 3칸의 쌍여닫이문으로 되어 있는데, 그 문을 밀고 들어가면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다섯 성인, 중국 송나라의 두 현인인 정이(程頤)와 주희(朱熹), 그리고 우리나라의 선현(先賢)인 설총과 최치원 등 18명의 위패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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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김씨 눌곡종택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 366
Description:
눌곡종택은 신라 경순왕의 셋째아들인 영분공의 24대손 아천(我泉) 김주린(金周麟)이 지은 것이다. 김주린은 그의 아들 김언수(金彦壽)와 함께 눌곡에 이사 와서 터를 잡고 이 눌곡종택을 건립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교육공간의 목적으로 지었지만, 현재는 경주김씨(慶州金氏) 아천공파(我泉公派)의 종가로 사용되고 있다. 눌곡종택은 눌곡리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마고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경주김씨 집성촌인 눌곡리의 중간에 위치한 눌곡종택은, 마을을 바라보듯 마고산의 품에 안겨 있듯, 넉넉한 종가집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눌곡종택은 50여 평의 대지 위에 'ㅁ'자 형태의 본채와 따로 떨어진 사랑채, 별채가 일곽을 이루고 있다. 2008년 경상북도청이 비용을 들여 건축 당시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여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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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화당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 428
Description:
감화당은 김종우(金宗禹)를 추모하기 위하여 김해덕(金海德)이 1936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감화당은 정면 2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주변으로 낮은 시멘트 담이 둘러져 있고 감화당에 오르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감화당에 서면 눌곡리 마을을 관통하며 흐르는 황천을 내려다 볼 수 있고, 수령 5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눈 아래 들어온다. 황천과 보호수 등을 고려하였을 때 과거 그 주변 경관이 수려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는 관리소홀로 인하여 감화당 이곳저곳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이며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은 듯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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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정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도계1리 548
Description:
영모정은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를 추모하기 위하여 1914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도계리 자연마을 독지마을 우측 산능선 중간에 위치해 있다. 영모재가 위치한 독지마을은 김녕김씨 충의공파 집성촌으로 비탈진 산능선을 따라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약 20가구 내외가 거주하는 이곳 중턱에 영모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으로 수령 200년 내외의 느티나무가 정원수와 같은 역할을 하며 영모재를 감싸고 있다. 영모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2010년 현재 새단장을 위하여 내외부적으로 전면적 수리를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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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수재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송천리 124-2
Description:
돈수재는 영덕에 세거한 수안김씨(遂安金氏) 부장공파(部長公派)의 종택이다. 백성의 구휼에 헌신했던 유학자 돈수(遯峀) 김덕유(金德裕)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 김정련(金鼎鍊)이 1804년에 건립한 건물이다. 건물을 건립할 당시 사림과 주민의 자발적인 협조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80년대에 새로 중수하였다. 돈수재는 정면 6칸, 배면 4칸, 측면 5칸 반의 ‘ㅁ’자형 목조와가로서, 중문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사랑채를, 우측에는 문간방․아랫방을 두었다. 돈수재는 송천리 자연마을 중 오지에 속하는 먹골 중턱에 위치한다. 몇 가구 거주하지 않을 듯한 먹골 마을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정비가 잘 된 낮은 토담과 8월 흐드러지게 핀 백일홍이 이곳이 종택임을 알려준다. 토담 주변은 비교적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며, 토담 내 우측에는 찾는 방문객들을 위한 초가집을 개조한 화장실 시설도 별도로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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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계정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57-1
Description:
운계정은 신경제(申經濟)를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건립초기에는 미안마을 평산신씨 종가 뒤편에 자리하였지만, 1982년경에 현 자리로 이건 및 중건하였다. 운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주변으로 시멘트 담장을 둘러져 있으며, 마당은 시멘트로 마무리하였다. 입구는 목조대문이다. 내부 대청마루 상단에는 운계정 현판 1기와 운계정중건기 편액 1기, 운계정중수기문과 운계정상량문을 써 놓은 액자가 걸려있다. 운계정이 위치한 미안마을은 평산신씨 집성촌으로 인근 지품초등학교 앞 새마을에 위치한 ‘사존재(思存齋)’에서는 신경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운계정은 일년에 두 번 평산신씨가 문중모임을 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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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존재(思存齋)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 122-5
Description:
사존재는 운계(雲溪) 신경제(申經濟, 1555~1614)와 삼우정(三友亭) 신의제(申義濟)를 추향하기 위한 재사이다.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이 1716년 평해군수로 재직할 때 재사 건립에 필요한 목재를 지원했다고 전해진다. 신경제는 신홍제(申弘濟), 신의제, 신겸제(申兼濟) 등과 함께 정유재란 때 창녕 화왕산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군자감 판관에 제수되었다. 사존재는 지품면사무소를 지나 신안교를 건너 우측으로 돌아 하천을 끼고 마을 길을 따라 200미터 정도 들어가면 마을의 가옥들 사이에 좌측 편 야산을 배산(背山)으로 한 '一'자형 건물로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평면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면 구성은 어간(御間)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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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당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신양리 265-2
Description:
죽은당(竹隱堂)은 남승필(南承弼)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남경택(南京澤)이 1859년 건립한 것으로 1937년에 중수하였다. 죽은당은 신양리 자연마을 식율 마을 뒤편 산이 마을과 만나는 끝지점에 위치한다. 오십천을 따라 좌우로 형성된 식율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넓게 조성된 대나무와 함께 그 아래 자리 잡은 죽은당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죽은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소로 수장, 홑처마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태풍으로 기와가 유실된 뒤 기와를 새로 얹은 것 이외에는 외관이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우측으로 건물의 관리자이자 소유자인 12대손이 거주하는 민가가 있다. 두 건물은 낮은 시멘트 담장 내 함께 자리 잡고 있어서 하나의 공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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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오천1리 550
Description:
세심정은 분성배씨(盆城裵氏) 영덕 입향조인 배담(裵湛)의 유지에 따라 후손들이 선조 배진도(裵震度)를 추모하기 위하여 1863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의 건물은 2회에 걸쳐 중수한 것이다. 배진도의 문하생들은 은사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반선재’라고도 하였다. 세심정은 배씨 가문의 5형제가 세거하였다고 하는 오일동 끝자락인 오십천 변에 위치하며, 아래로는 “물길 따라 은어 춤추고 복숭아 노래한다”는 말이 전해져 올 정도로 깨끗한 오십천이 지나간다. 세심정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소로 수장,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주위에는 블록담장을 둘렀으며, 후면 칸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고 전면 칸은 마루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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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당(愚溪堂)
Address:
경북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 729
Description:
우계당(愚溪堂)은 박인후(朴隣厚, ?~1837)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후학의 양성을 위해 지은 강학장소이다. 1786년에 오천동 골짜기를 흐르는 금천내를 앞에 두고 남산을 배산하여 수려한 경관을 병풍삼아 건립하였다. 이곳에서는 이후로 학계가 결성되고 학문과 인격을 정진하여 많은 후학을 양성 배출하였으며, 1900년 초까지 운영되어 온 학계안(學契案)과 박중산(朴重山, 1680~1758)이 소지했던 휴대용 작전 지도첩인 고지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5호)가 전해지고 있다.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평면구성은 좌측에 통칸의 방과 4칸 대청이고 기둥상부는 간략한 익공으로 초각하였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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