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산서원 이야기

    의산서원 이야기   의산서원 이야기   의산서원 이야기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 석종(石宗)

    Description:

    영주에서 예천으로 통하는 큰길을 따라 반두들을 거쳐 지나가다가 성곡(城谷)으로 들어서 5리쯤 들어가면 나지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동네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경주이씨가 400여 년을 세거해 온 갈미마을이다. 갈미마을은 용암산에서 떨어진 줄기가 동남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매봉산을 일으키고 남으로 틀어 마을의 진산을 이루고, 동으로는 멀리 연화산이, 남으로는 주마산이 마치 성곽처럼 에워싼 가운데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갈미마을은 성오당 이개립이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 이 마을에 1610년(광해군 2) 마을 사림들이 군수에게 주청하여 의산서당을 창건하였다.

  • 더위를 피해 쉴만한 정자, 피염정

    더위를 피해 쉴만한 정자, 피염정   더위를 피해 쉴만한 정자, 피염정   더위를 피해 쉴만한 정자, 피염정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갈산 1리

    Description:

    피염정(避炎亭)은 무더운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여 쉴만한 정자라는 뜻으로 조선조 진사 이희음(李希音)이 지은 풍류공간이다. 원래 있던 장소가 물난리로 잠기면서 자리를 옮겨 지금은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長壽面) 갈산(葛山) 1리 장구목 길옆에 있다. ‘염(炎)’자가 2개의 ‘불[火]’로 이루어진 것만 봐도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겠는데, 정자의 원래 주인이 부여한 ‘피염(避炎)’이라는 의미는 비단 사계절의 순환에 따라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무더위를 식힐 뿐 아니라,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속세의 불구덩이를 피한다는 바람도 포함하고 있다.

  • 초야에 묻힌 선비의 집

    초야에 묻힌 선비의 집   초야에 묻힌 선비의 집   초야에 묻힌 선비의 집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18-2

    Description:

    화기리 인동장씨종택은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花岐) 1리 꽃계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초기의 선비 장응신(張膺臣)의 옛 집이다. 장응신은 연복군 장말손(張末孫, 1431~?)의 손자로, 아버지 장맹우(張孟羽, 1470~1511)가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황해 도사로 좌천된 후 갑자기 병사하자 동생 장응필과 함께 영주시 초곡마을(지금의 사일마을)로 들어갔다가 문경동(文敬仝, 1457~1521)의 사위가 되었다. 화기리 인동장씨종택은 인동장씨 영주 입향시조인 장응신의 손자 장언상(張彦祥, 1529~1609)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집은 口자형 정침과 뒤편 언덕 위에 사당과 유물관, 영정각 등이 자리 잡고 있다.

  • 소나무와 눈을 상징하는 송설헌

    소나무와 눈을 상징하는 송설헌   소나무와 눈을 상징하는 송설헌   소나무와 눈을 상징하는 송설헌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18

    Description: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長壽面) 화기리(花岐里)에는 조선 세조 때 적개공신 연복군(延福君) 장말손(張末孫)의 유물각(遺物閣)과 화기리 인동장씨종택(花岐里 仁洞張氏宗宅)이 있으며, 그 뒤쪽에 송설헌(松雪軒)이 있다. 본래는 장말손이 당시 예천 땅 화장(花庄)에 터전을 마련하고, 거처를 지으면서 당호를 송설헌이라 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 손자인 장언상(張彦祥)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정자 역시 옮겨 세웠다.

  • 노루들과 녹야당

    노루들과 녹야당   노루들과 녹야당   노루들과 녹야당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호문리

    Description:

    녹야당(鹿野堂)은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長壽面) 호문리(好文里) 녹동(鹿洞), 속칭 곰실마을 노루들에 있다. 이 마을 이름이 노루들이 된 것은 이 정자의 주인인 단양장씨 진사 장진(張溍)이 이곳에 녹야당을 짓고 머물며 정자 이름을 자호로 취한 데서 비롯되었다. 정자의 주인 장진은 외가 동네인 이곳에 들어와 발치에 내가 흐르는 숲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 풍기향교 이야기

    풍기향교 이야기   풍기향교 이야기   풍기향교 이야기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교촌리 147-1

    Description:

    향교는 문묘와 어진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는 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이다. 풍기향교는 원래 금계동에 있었으나 1542년(중종 37)에 풍기 군수 주세붕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그 후 1692년(숙종 18)에 옛터로 다시 옮겼다가 1735년(영조 11)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겨 세웠다. 6·25전쟁 때 동재와 서재, 양심루(養心樓)가 불에 타 없어졌으며, 현재 대성전(大成殿)·명륜당(明倫堂)·동무(東廡)·마마무(摩摩廡)·서무·헌관청(獻官廳)·교직사(校直舍) 등이 남아 있다.

  • 여울목 절벽 위의 금선정

    여울목 절벽 위의 금선정   여울목 절벽 위의 금선정   여울목 절벽 위의 금선정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 2리(장생이마을)

    Description:

    금선정(錦仙亭)은 조선조 선비의 풍류공간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장생이마을 가운데로 금계(錦溪)의 깊은 여울목에 절벽이 드리워져 있고, 그 위에 우뚝 솟은 사각 정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금선정이다. 1781년(정조 5)에 황준량의 후손이 세웠다.

  • 황준량을 기리는 금양정사

    황준량을 기리는 금양정사   황준량을 기리는 금양정사   황준량을 기리는 금양정사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Description:

    금양정사(錦陽精舍)는 금계 황준량을 기리며 후학들이 공부했던 배움터이다. 황준량은 문과에 급제해 입신양명의 길이 열렸지만 청빈한 선비의 삶을 지향하였다. 공부에 몰두할 아담한 집을 평생 동안 꿈꾸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그의 사후에 그 꿈이 이루어져 금양정사가 세워졌다. 오늘날의 금양정사는 영조 때의 건물이다. 병자호란 때 원래의 건물이 화재로 무너져 없어지고, 황준량의 손자 황성(黃垶)이 중건하였다.

  • 선비의 절의를 간직한 큰 선비 집

    선비의 절의를 간직한 큰 선비 집   선비의 절의를 간직한 큰 선비 집   선비의 절의를 간직한 큰 선비 집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희여골)

    Description:

    숭덕사(崇德祠)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백리(희여골)에 있다. 조선 성종·중종 연간에 활약한 황사우(黃士佑, 1486~1536)와 황섬(黃暹, 1544~1616)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정면 3칸, 측면 칸 반의 굴도리집이다. 황사우는 중종 때 대사간·대사헌·이조 판서를 지냈으며, 황섬은 인조 때 호종 1등 공신으로 정익공(貞翼公)의 시호를 받았다. 황섬 만년의 거처인 수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누각형 건물이다. 수락당과 숭덕사는 앞뒤로 함께 서 있다.

  • 낮춤을 아는 선비의 집

    낮춤을 아는 선비의 집    낮춤을 아는 선비의 집    낮춤을 아는 선비의 집

    Address:

    경상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44

    Description:

    선성김씨 해우당고택(宣城金氏 海愚堂古宅)은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무섬)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海愚堂) 김낙풍(1825~1900)이 지은 집이다. 건축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망와의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79년경을 건축연대로 볼 수 있다. 이 집은 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행랑채와 방아간채가 건축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6칸으로 사랑채 우측 1칸이 돌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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