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어현

    연어현   연어현   연어현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Description:

    연어헌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송암 권호문이 자연과 벗하며 살았던 유서 깊은 정자이다. 앞쪽에 한글로 쓴 연어헌 현판이 하나 더 있으며 내부에는 무민재, 유정재 등의 현판과 시판이 걸려 있다. 청성산 기슭에 낙동강을 굽어보며 자리잡고 있다. 연어란 솔개가 하늘로 날아 오르거나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 오르는 것이 다 진리의 작용이라는 말에서 따왔다. 당호는 주세붕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2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측에 각각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누각 아래의 기둥을 약간 길게 하여 누각식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권호문의 본관은 안동이며 이황의 문인으로 벼슬길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던 유학자이다.

  • 파산정

    파산정   파산정   파산정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도양리 산3번지

    Description:

    파산정은 안동시 풍천면의 낙동강 기슭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파산 류중엄의 정자이다. 류중엄은 1564년(명종 19) 낙동강 언덕에 정자를 지어 학생을 가르치는 장소로 삼고자 스승인 퇴계 이황에게 물었는데 “형편에 맞게 차차 이룩하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러나 미처 그 뜻을 이루기도 전에 34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길을 가는 사람마다 그곳을 가리키며 애석해 하던 것을 1960년 사림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드디어 정자를 짓고 파산정이라 현판을 걸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아주 단출하다. 하회마을을 감아 도는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벼랑 위에 건립되어 주위 경관이 아주 빼어나다.

  • 봉암서원

    봉암서원   봉암서원   봉암서원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매곡1리 559번지

    Description:

    처음에 1802년(순조 2) 10월에 봉암사를 창건하고 남응원, 남융달, 남급, 남천한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매년 3월과 9월 중정일에 제사를 지내 오다가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뒤 1928년에 강당과 주사를 다시 지었고, 1962년에 유림의 발의로 사당을 세웠다. 이때에 사당 6칸과 문간 3칸, 전사청 2칸 등의 건물을 완성하였다. 1964년에 회의를 열어 봉암서원으로 회복하여 남응원을 중심에 모시고 남융달, 남급, 남천한을 배향하였다. 주향으로 모셔진 남응원은 영양인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한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서원의 건물 구성은 사당인 상현사, 강당인 람휘당, 숭덕재, 광업재, 전사청, 고직사로 이루어져 있다.

  • 병산서원

    병산서원   병산서원   병산서원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Description:

    병산서원은 원래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 그 전신인데, 1572년(선조 5) 서애 류성룡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겨 놓았다. 1604년(선조 37) 서애가 죽자 후학들이 1614년(광해군 6)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철종 때 현판을 내려받아 위치를 굳혔다. 서원은 화산의 동남쪽 경사지에 남향하여 낙동강 건너의 병산 절벽을 바라보고 있다. 경사지 아래쪽의 외삼문인 복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연못이 있고 건너편에 높은 석축이 있는데 이 석축의 계단을 오르면 보기 드물게 큰 만대루가 동서로 길게 놓여 있다. 그 밑을 지나 계단을 다시 오르면 마당 건너편에 강당인 입교당과 그 앞 양측에 동·서재가 마주보고 있는 교육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동재 뒤편 담장 밖에는 주소인 口자형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 병산서원 만대루

    병산서원 만대루   병산서원 만대루   병산서원 만대루

    Address: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Description:

    병산서원의 복례문을 지나면 거대한 규모의 누각이 앞에 서 있는데 바로 만대루이다. 만대루의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에서 따온 말이다. 낙동강을 향해 열려 있는 만대루는 서원 주변의 경치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강당인 입교당과 마주보고 있으며, 유생들이 행사 때 한자리에 모였던 대강당의 역할을 하였다. 7칸의 단순한 이 건물은 병산서원의 집합적 질서의 묘미가 함축되어 있다. 만대루의 기둥들은 주변 경관을 수직적으로 분절시켜 한 폭 한 폭이 병풍이 된 듯 보여주고 있다. 중앙 마당을 감싸는 입교당, 동재·서재 그리고 외부로 열려 있는 만대루의 시각적 구성은 외부에서는 폐쇄적인, 내부에서는 개방적인 서원 건축의 특징을 나타낸다.

  • 병산서원 입교당

    병산서원 입교당   병산서원 입교당   병산서원 입교당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Description:

    병산서원의 입교당은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이다. 원래 명칭은 숭교당이며, 명륜당으로도 불렸다. 입교당은 교육 건물의 권위를 살려서 높직한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좌우에 과장될 정도로 커다란 아궁이가 뚫려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서원 강당의 구성을 따라서 가운데 대청마루가 놓이고 양쪽에 온돌방이 놓여 있다. 동쪽방인 명성재는 원장실에 해당하고, 서쪽방인 경의재는 교무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서원 교육은 철저하게 자습 위주였고, 주요한 수업은 보름에 한 번씩 열리는 강회에서 구술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바로 이 구술시험이 열리는 공간이 강당의 대청마루이다. 이곳 입교당의 마루에 앉아 있으면 좌우의 동재·서재가 한눈에 들어오고 정면으로는 만대루의 기둥 사이로 병산절벽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체화정

    체화정   체화정   체화정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상리 2리 447

    Description:

    체화정은 진사 이민적이 효종 때 학문을 닦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그 후 순조로부터 효자 기념의 정려비를 받았던 이한오가 노모를 이곳에 모셔 효도하던 곳이라 한다. 정자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다락집이다. 일반적으로 방 앞쪽에 툇마루를 두는 경우 칸 사이를 방보다 작게 잡는 것이 일반적인 형식이라면 여기서는 기둥 사이를 똑같은 넓이로 잡아 3칸 마루를 들이고, 뒤쪽에 온돌방 1칸을 두면서 좌우 옆 칸에 마루방을 들인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면엔 계자난간을 둘러 앞쪽의 연못을 바라보면서 여유를 즐기도록 배려하였는데, 이 인공 연못은 방장, 봉래, 영주의 세 신선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을 두어 정자와 잘 어울린다. 전체적으로 건립 당시의 형태가 잘 유지되고 있으며 특히 연못과 정자의 구성은 조경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 서간정사

    서간정사   서간정사   서간정사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서미1리

    Description:

    서간정사는 병자호란 때 화의를 반대하며 끝까지 절개를 지킨 청음 김상헌을 기리기 위하여 1669년(현종 10)에 지어져 김상헌을 제사지냈으며, 그 후 1786년(정조 10)에 서간사로 사액되었다. 현재는 강당만이 남아 있으며, 서간정사 조금 위쪽에 청음 김상헌 유허비와 비각이 있다. 이 비와 비각은 김상헌의 7대손인 김학순이 1830년(순조 30)에 세웠다. 이 비는 거대한 둥근 바위(빗집바우) 위에 세워져 있는데, 바위 정면에 ‘목석거(木石居)’라고 새겨져 있다. 김상헌은 조선 인조와 효종 때의 선비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와의 화친을 배척하고 끝까지 싸움을 주자앟다가 인조가 항복하자 안동으로 은퇴하였다.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자결을 기도하다가 실패한 뒤 학가산에 들어가서 두문불출하였다.

  • 안동김씨 비안공구택

    안동김씨 비안공구택   안동김씨 비안공구택   안동김씨 비안공구택

    Address: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24-3

    Description:

    풍산읍에서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오른편으로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 소산마을이다. 소산리의 중심은 바로 큰마로 불리워지는 곳으로 안동 김씨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 조선 세종 때에 비안현감을 지낸 비안공 김삼근의 옛집이 있다. 돈소당이라는 당호보다 비안공에 의하여 처음 지은 집이라 해서 비안공구택이라 부르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1호로 지난 1989년에 지정되었다. 돈소당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정침의 전면은 사랑채와 중문이 자리잡고 뒷편에 안채가 배치되고 좌우에 보조건물을 연결한 구조이다. 자연석으로 높은 축대를 쌓고 축대의 가운데에 계단을 설치한 후 정침을 앉혔다. 돈소당이란 현판은 사랑채에 걸려 있고, 그 옆에 비안공구택이라는 현판을 잇대어 걸었다.

  • 안동김씨 동야고택

    안동김씨 동야고택   안동김씨 동야고택   안동김씨 동야고택

    Address:

    풍산읍 소산리 212

    Description:

    소산의 옛 이름은 금산촌이다. 병자호란 때 청음 김상헌 선생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에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을 따서 소산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검소하고 깨끗한 선생의 성품이 마을 곳곳에 깃들어 있는 곳이다. 동야고택은 안동김씨 19대손 김중안이 지었다고 하나 건축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후손인 동야 김양근의 호를 따서 집이름도 동야고택이라 불렀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이 건물은 낮은 앞마당에 2단의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一’ 자형의 사랑채와 사랑채 뒤에 ‘ㄷ’ 자형의 안채를 배치시켜 튼 口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안채에 사랑채의 기능이 남아 있고 큰사랑방이 있는 사랑채도 소박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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