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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을 바라보는 집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923
Description:
인동장씨 장석우가옥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 2리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심원정(心遠亭) 뒤편에 위치한 이 집은 1800년대 초에 건립된 가옥으로 처음에는 까치구멍집인 안채만 있었으나 이후에 사랑채와 방앗간채를 증축하여 튼 口자형 집이 되었다. 이 튼 口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는 형태는 찾아보기 드문 예이다. 또한 안채의 평면은 사랑채가 나중에 지어지면서 마구간이 사랑채로 옮겨가고, 마구간 자리에 웃방이 들어서는 평면상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어 주거사 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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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상을 추모하여 건립한 침석정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 2리
Description:
침석정(枕石亭)은 헌종 때 서계상(徐繼祥)의 후손 서병민(徐丙玟)이 그를 추모하여 건립하였다. 서계상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치욕스러운 화의(和議)에 울분을 품고는 분연히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처음에 청부(靑鳧 : 청송의 옛 이름)에 자리를 잡았으나 나중에 양양(襄陽) 선동(仙洞)에 옮겨 살았는데, 당시 살던 곳의 편액인 선고헌(仙皐軒)이 현재 침석정에 걸려 있다. 서병문은 선고헌이란 이름을 놔두고, 침석정이라는 이름을 취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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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의 유덕을흠모해서 건립된 정자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龍穴) 2리
Description:
"심서엄(深棲广)은 경상북도 영주 남쪽 30리 평은면 용혈 2리에 있는데, 안동김씨 김영하(金永河)가 세웠다. 그 후 서숙에서 공부하던 제자들이 유덕을 흠모하여 심서엄을 중건했다고 한다. ‘엄(广)’자를 보면 그 자체로 집인데, 겉을 좀 두르기는 했지만 속이 없고, 바위와 소나무 2그루를 이용해 지었다는 것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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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서원 이야기
Address:
경북 영풍군 평은면 천본리 55-1
Description: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 간재 이덕홍이 세운 오계정사의 후신으로 정사가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지자 1600년(선조 33)에 이덕홍의 장남인 이시가 쌍계마을로 이건하고 한호의 글씨로 관성재·관서헌의 편액을 걸었다. 1665(현종 6)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존사를 건립하였다. 1691년 오계서원으로 승격하고,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서원 침수 피해가 있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고종 때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19년에 복향하였고, 1978년에 도존사를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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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풍경이 아름다운 만대정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 1리
Description:
만대정(晩對亭)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에 있다. 저녁풍경이 아름다운 정자이다. 조선시대 송복원이 영주 고을 평은면 언덕에 정자를 세우고 미처 이름을 짓지 않고 있었다. 친구인 오운(吳澐)이 우연히 들렀다가 사방을 둘러보고는, 두보(杜甫)의 「백제성루(白帝城樓)」에 나오는 시구 ‘푸르른 절벽은 저녁나절에 마주할 만하니[翠屛宜晩對]’가 떠오른다 하여 만대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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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이 봉사하는 집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평은리 1318
Description:
양지암은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평은리 양지암(養芝庵)마을에 있다. 수안김씨(遂安金氏) 김언광이 아버지인 현감 김정몽의 묘지를 수호하기 위하여 세운 재사이다. 그러나 김언광은 딸만 셋을 두어 사위인 김린·김봉상·박대령에게 외손봉사를 유언했다. 이 후 이 재사는 그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어 오고 있다. 양지암마을의 나지막한 야산자락에 자리 잡은 양지암은 4동의 건물이 튼 口자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에는 김린의 호를 딴 수우당(守愚堂)이라는 중층 누각을 세우고, 누 아래로 출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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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이야기
Address: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면 내죽리 151
Description: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학사를 옮겨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그 후 1544년(중종 39)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의 위패를 모셔 제사지냈다.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 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과 『사서오경(四書五經)』·『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원의 건물로는 명종의 친필로 된 ‘소수서원’이란 편액이 걸린 강당, 그 뒤에는 직방재와 일신재, 동북쪽에는 학구재, 동쪽에는 지락재가 있다. 또한 서쪽에는 서고와 고려 말에 그려진 안향의 영정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가 안치된 문성공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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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향교 이야기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437
Description:
순흥향교는 소수서원 맞은 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문루인 영귀루를 지나면 동재와 주사가 명륜당 앞에 있고, 명륜당 뒤의 내삼문을 통과하면 대성전이 나타난다. 대성전 앞에는 동무·서무가 마주보고 있다. 크게 보아 대성전과 명륜당, 영귀루가 남북으로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었고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향공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공간이 전후에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법을 따르고 있다. 대성전은 장대석과 막돌을 혼용하여 기단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멘트로 마감하여 전체를 살필 수 없다. 명륜당은 동재와 주사에 비해 다소 대지가 높은 관계로 전면에 축대를 조성한 후 견치석으로 기단을 조성하고 건물을 얹혔다. 영귀루는 이건되면서 문루로서의 기능을 다소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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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당 이야기
Address: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2
Description:
소수서원에서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명륜당(明倫堂)이라 불린다. 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강학당의 지붕 처마 밑에 ‘백운동(白雲洞)’이라는 편액이, 그리고 강당 내부 북면에는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은 장대석의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다듬은 초석을 놓았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되어 있다. 1542년(중종 37) 서원 창건 당시에 건립된 조선 중기의 건물로 전통건축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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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공묘 이야기
Address: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2
Description:
소수서원 경내에 있는 사당이다. 문성공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안축(安軸)·안보(安輔)·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인데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좌(柱座)를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서원창건 당시에 건립된 건물로,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이어서 전통건축물로서의 가치가 높은 문화재이다. 매년 음력 3월, 9월 초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주세붕이 직접 쓴 제향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홀기문서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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