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헌집 (可軒集) 글자크기
서지
 
해제
   
『가헌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인 신석호(申錫祜)의 시문집이다. 신석호의 자는 덕문(德文), 호는 가헌(可軒)이다.

이 책은 1962년에 그의 현손인 용호(龍鎬)등이 편집, 간행하였고, 석인본이다. 권두에 이기윤(李基允)의 서문과 권말에 박증헌(朴曾憲), 그의 증손인 기능(基能), 현손인 용호 등의 발문이 있다. 부 3편, 시 53수 외 아래 목록에 제시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선우(李善雨)가 찬(撰)한 행장(行狀)에 의하면 이기윤은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한 후로 황조산(黃鳥山) 아래에 봉정(鳳亭)을 짓고 숨어 살았다. 대원군(大院君)이 영남 유람길에 찾아와서 만났는데 서로 의기가 맞아 시를 지어 이기윤에게 주기도 하였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낙파상공(洛坡相公) 유후조(柳厚祚)를 호동사제(壺洞私第)로 찾았는데, 낙파공이 반겨주었으나 ″이곳은 초야의 선비가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하여 이내 돌아왔다. 낙파공의 추천으로 경상도 연보전도유사(捐補錢都有司)가 되었으며 1876년(고종 13) 일본과의 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 홍재학(洪在鶴), 황재현(黃載顯)과 함께 상소하여 그 불가함을 논하였다 한다.

「병자척왜소(丙子斥倭疏)」에서는 1876년(고종 13) 개화와 친일을 주장하는 박영효(朴泳孝)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잡저 가운데 「용학발문(庸學發問)」에서는『중용』과『대학』의 난해한 부분을 의문형식으로 문목을 만들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또,「통도내교원각유소문(通道內校院各儒所文)」은 병인양요 때 경상도 각 향교와 서원에 보낸 통문으로서, 유학전통의 규범과 질서를 수호하려는 확고한 신념에서 척사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삼정책(三政策)」은 1866년에 실시한 경시(慶試)의 책문이다. 비록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전부(田賦)·군적(軍籍)·환곡(還穀)에 대한 당시의 폐단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시정을 촉구한 것으로, 당시의 국내정세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또한 삼정법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